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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판에 뛰어드는 ‘영상 마법사’들

입력 | 2015-06-15 03:00:00

임필성-박찬경-김지운 감독 등 잇달아 무용 공연 연출




13일 막을 내린 국립무용단 신작 ‘적’의 한 장면. 이 작품은 영화 ‘마담 뺑덕’ 등을 연출한 임필성 감독이 전체연출을 맡아 화려한 색감, 세련된 미장센 등으로 호평을 받았다. 국립극장 제공

1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막을 올린 국립무용단의 신작 ‘적’ 공연장엔 충무로의 스타들이 줄줄이 떴다.

영화 ‘설국열차’의 봉준호 감독,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놈놈놈)의 김지운 감독, ‘베를린’의 류승완 감독, 영화배우 정우성 이정재 엄지원 이솜 등의 발길이 이례적으로 줄을 이었다.

이들이 무용 공연장을 찾은 이유는 영화 ‘남극일기’ ‘마담 뺑덕’ 등을 연출한 임필성 감독의 무용 연출 데뷔 무대를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국립무용단이 과감하게 영화감독에게 작품을 맡긴 ‘적’은 세련된 미장센으로 공연 시간 내내 영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무용과 영화계의 컬래버레이션(협업)이 화제가 되면서 흥행에도 성공했다. 객석 점유율은 첫 공연일인 11일 99%, 12일은 90%, 13일엔 100%를 기록했다.

영화감독의 무용 진출은 새로운 연출 시도를 원하는 무용계와 몸의 예술인 무용을 통해 영화 연출 공부를 원하는 감독의 필요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왼쪽부터 최근 무용 연출을 맡거나 맡을 예정인 영화감독 임필성, 박찬경, 김지운. 국립무용단·국립현대무용단 제공

올해 무용계의 두드러진 특징은 영화인과의 협업이다. 5∼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른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일차원’은 영화 ‘만신’의 박찬경 감독이 시각 연출을 맡아 화제가 됐다. ‘공일차원’은 유료 객석 점유율도 평균 83.7%에 달해 좋은 성적을 거뒀다. 국립현대무용단은 11월 공연할 예정인 ‘어린왕자’의 연출 역시 ‘놈놈놈’의 김지운 감독에게 맡긴 상태다.

영화감독이 무용에 도전장을 내미는 이유는 무엇일까.

임필성 감독은 “나를 비롯해 박찬경, 김지운 감독의 영화 연출 스타일이 스토리만큼이나 비주얼 면을 중시하다 보니 육체적 춤의 언어나 장면 해석을 요구하는 무용 연출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13일 ‘적’ 공연장에서 만난 김지운 감독도 “배우에게 연기 주문을 할 때 연출가가 몸의 움직임을 세세히 알고 있어야 할 때가 많다”며 “인간의 몸을 가장 아름답고 강하게 표현하는 무용수와의 작업이 영화감독 입장에선 새로운 연출 공부이기 때문에 무용 연출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고 설명했다. 박찬경 감독도 또다시 무용 연출 의뢰가 들어온다면 적극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무용에 대중적 관심과 새로운 감수성을 불어넣고 싶은 무용계의 개방성이 영화감독의 진출에 한몫했다는 평도 나온다. 이미 패션디자이너 정구호 씨가 2013년 ‘묵향’ ‘단’을 연출해 흥행에 성공하면서 협업에 비교적 열린 자세를 갖고 있다는 것. 올 들어 2개의 작품 연출을 영화감독에게 의뢰한 국립현대무용단 안애순 단장은 “다른 장르와 협업하면 습관적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다”며 “무용의 비언어적인 움직임의 한계를 영화감독들이 시각적으로 잘 풀어내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고 평했다.

무용평론가 장인주 씨도 “영화감독의 경우 안무가에 비해 움직임, 무대 장면 전환 등의 타이밍이 탁월하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평했다.

하지만 다른 장르와의 협업에 대해 유행만 타지 말고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장 씨는 “다른 장르와의 협업이 긍정적이지만 마치 컨템포러리 작업의 정답인 양 인식되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용평론가 심정민 씨도 “결국 무용이 주체가 돼 영화를 끌어들였느냐, 아니면 주객이 전도돼 영화감독이 무용을 단순히 끌어들였느냐의 문제가 협업의 성패에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