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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 이겨낸 20세기 지성…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삶

입력 | 2015-05-26 03:00:00

영화 ‘뷰티풀 마인드’ 실제 주인공… 천재 수학자 존 내시 교통사고 사망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유리창을 칠판 삼아 문제를 풀고 있는 존 내시 박사 역할을 맡은 배우 러셀 크로. 동아일보DB

정신분열증을 극복하고 게임 이론으로 20세기 지성사에 한 획을 그은 천재 수학자 존 내시 박사(사진)가 23일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그의 영화 같은 인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향년 87세.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유리창을 칠판 삼아 문제를 풀고 있는 존 내시 박사 역할을 맡은 배우 러셀 크로. 동아일보DB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한 내시 박사는 20대 후반부터 30년간 정신분열증에 시달렸지만 이를 지성의 힘으로 극복하며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움켜쥔 인물. 이날 사고도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아벨상을 받기 위해 노르웨이에 다녀온 뒤 미국 뉴저지 주 뉴어크 공항에서 귀가하던 중 발생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내시 박사는 22세 때인 1950년 ‘비협력 게임’이라는 27쪽짜리 논문으로 명문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며 인생의 정점으로 치닫는 듯했다. ‘내시 균형’으로도 불리는 그의 게임 이론은 당시 독보적인 성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소련과 냉전을 치르던 미 정부는 그에게 신문과 잡지에 숨겨진 소련의 암호를 풀어 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수락한 그는 소련 스파이가 자신을 미행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정신분열증을 앓게 된다. 이날 사고로 함께 숨진 평생의 반려 얼리샤 내시 씨도 간병에 지쳐 그의 곁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내시 박사는 최근 미 공영방송 PBS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숫자를 집중적으로 보다 보니 나중엔 하늘에서 숫자를 통해 어떤 계시를 받는다는 느낌을 받았었다”고 토로했다.

내시 박사는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로 서서히 정신분열증과의 싸움에서 이겨 갔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기 전 인터뷰에서 “지성의 힘이 서서히 환각을 거부했고 다시 내 안의 이성을 작동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사망 소식에 미 언론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이론의 창시자이자 인간 승리의 상징이 우리 곁을 떠났다”고 애도했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내시 역을 맡았던 배우 러셀 크로는 24일 트위터에서 “존과 얼리샤는 경이적인 파트너십을 보여 줬다”고 애도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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