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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의 법과 사람]박 대통령이 찍은 황교안 총리 후보자

입력 | 2015-05-23 03:00:00



최영훈 논설위원

국무총리 하마평에 올랐던 사람 중 한 명인 이명재 민정특보는 오래전에 고사했다. 고사 이유는 “법조인이나 대구 경북 출신은 피하는 게 좋다”는 것이었다. 두 가지가 겹치는 자신은 총리가 돼선 안 된다는 소신을 끝내 굽히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막판까지 남은 법조인 5명 중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낙점했다.




부패 척결 의지 내가 더 강해


마침 그가 총리 후보자에 지명되기 엿새 전 인터뷰한 일이 있다. 그때 총리 제의를 받은 일이 있는지 세 차례나 물어봤다. “그런 일 없다”고 부인한 그에게 사실이냐고 거듭 묻자 “그걸 거짓말 하겠느냐”며 웃음 지었다. 이틀 뒤 미진한 내용을 보완하기 위해 통화를 하면서 다시 물었다. 제의를 받고 고사했다는 게 사실이냐고 묻자 “(머뭇거리다) 언급하기 그렇다”고 답했다. 제의를 받은 것으로 알겠다고 하자 그는 “추측은 금물”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자신이 유력하다는 사실은 알았던 것 같다.

그의 총리 내정은 누가 천거한 것이 아니다. 100명 이상을 검증하며 돌고 돌다 ‘수첩 인사’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을 각오하고 박 대통령이 찍었다. 인터뷰 때 그에게 박 대통령이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물어봤다. “(박 대통령이) 국가관이 분명하고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분이니까, 법무부가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니까, 누가 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열심히 하면 좋게 볼 수밖에 없을 거다.”

대통령의 부패 척결 의지가 너무 강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그는 바로 “내가 의지가 더 강하다”고 답했다. 박 대통령과 황 후보자는 법과 원칙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코드가 딱 맞다. 청와대는 발탁 배경으로 부패 척결과 정치 개혁을 강조했지만 그는 경제활성화와 민생안정을 앞세웠다.

부패 척결은 검찰 경찰과 감사원이 소리 나지 않게 상시적으로 하면 된다. 대통령이나 총리가 앞장서 목소리를 높이면 공연히 ‘기획사정’ 논란에 휩싸여 수사나 감사 결과를 정치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의 돌출이 웅변한다. 그 바람에 사정수사는 빛을 잃었다.

박 대통령으로선 정치개혁을 완수할 수 있다면 남은 임기 내내 사정 드라이브를 지속해도 좋다는 생각일 것이다. 야당의 발목잡기로 어떤 개혁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의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 원로 법조인은 “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하책 중의 하책”이라고 꼬집었다.

칼로 다스리는 건 下之下策

야당이 벼르는 기세로 봐선 황 후보자의 총리 인준이 결코 순탄치 않겠지만 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할 것 같진 않다. 둑을 무너뜨릴 개미굴을 없애는 공안검사의 리더십을 확장하면 장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정을 총괄하는 총리의 역할은 둑 전체를 살피고 때론 둑 너머 저 멀리까지 볼 수 있어야 한다.

김종필 전 총리는 올해 설 연휴 때 이완구 총리에게 “절대로 저촉되는 말을 먼저 하지 말고 선행하지 말라”고 ‘2인자 처세’를 충고한 바 있다. 현직 법무부 장관을 바로 총리에 지명한 것은 조선시대라면 형조판서를 일약 영의정으로 등용한 셈이다. 황 후보자가 총리가 되면 역린(逆鱗)을 건드리지 않고 국정의 완급을 잘 조절한 명재상 황희 정승에게 길을 묻기 바란다.

최영훈 논설위원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