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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청춘은 나이 떼면 다 ‘내 얘기’

입력 | 2015-04-02 03:00:00

3월 25일 개봉뒤 줄곧 박스오피스 1위 순항… 영화 ‘스물’의 이병헌 감독




영화 ‘스물’을 연출한 이병헌 감독은 “당분간 코미디에 천착하고 싶다”고 말했다. “언젠간 진지한 작품도 찍을 날이 오겠죠. 하지만 아직은 웃고 장난치는 게 즐겁습니다. 호러나 스릴러는 평생 못 할지도. 잔인하면 눈부터 감거든요.”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저도 영화 ‘스물’ 치호(김우빈)처럼 딱히 하고픈 게 없는 잉여인간이었죠. 그래도 찬찬히 살피다 보니 하고 싶은 일이 생기더라고요. 하다가 실패해도 후회하지 않을. 청춘은 그래도 되는 때잖아요. 세상이 너무 몰아세우지 말고 넘어져도 일어설 여유를 줬으면 좋겠어요.”

영화 ‘스물’이 빵 터졌다. 일단 재밌어서 웃음이 터졌다. 반응도 터졌다. 지난달 25일 개봉하자마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 일주일 만에 135만 명을 넘었다. 이병헌 감독(35)은 의외로 심드렁해 보였다. “배우들이 잘한 거죠. 저야 뭐….” 첫 장편영화로 ‘성공적’ 데뷔전을 치른 그의 속내엔 뭐가 들어 있을까.

영화 ‘스물’의 세 주인공들. 왼쪽부터 경재(강하늘) 치호(김우빈) 동우(이준호). 흥미진진 제공

―이렇게 잘 될 줄 예상했나.

“무대인사 돌 때 분위기가 뜨겁긴 했다. 상당 부분 주연들 덕이다. 치호 경재(강하늘) 동우(이준호)는 다들 요즘 지구에서 제일 바쁜 친구들 아닌가. 근데 모이기만 하면 깔깔대고…. 셋이 동갑내기라 현장에서 호흡이 워낙 좋았다. 그런 느낌이 스크린에 잘 전해졌다.”

―탁월한 배우 선택도 감독 능력 아닌가.


“김우빈 이준호는 시나리오 쓸 때부터 염두에 뒀다. 우빈은 생김새도 근사하지만 목소리 톤이 좋았다. 준호는 2PM 시절부터 팬이었다. 강하늘은 첫 만남 때 인사하는데 딱 경재구나 생각했다. 여배우는 고민이 컸다. 자칫 비호감일 수 있는 캐릭터라. 소민(정소민) 소희(이유희) 은혜(정주연) 진주(민효린)…. 고맙게도 모두 기대 이상이었다. 이만하면 연출력은 몰라도 배우 보는 안목은 만족스럽다, 흐흐.”

―초쳐서 미안한데, 여성 캐릭터는 남성보다 매력적이지 않던데….

“끙…, 다 감독 탓이다. 세 남성 주인공은 내 분신과도 같다. 치호보다 더 멍 때리며 세월 보냈고, 경재처럼 대학 시절 짝사랑에 힘들었다. 동우만큼 알바 뛰며 고생도 했다. 아무래도 더 디테일하게 표현할 수 있더라. 헌데 여성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배우들한테 되게 미안하다.”

―그래도 다들 예뻤다고 한다.

“그렇담 다행이다. 감독이 뭘 어떻게 한 건 없다. 타고난 거다. 보기만 해도 흐뭇한 미모들 아닌가.”

―요즘 세대 얘긴데 중장년층도 좋아한다.

“진짜로? 제일 듣고 싶던 말이다. 몇몇 스태프가 이 영화는 시대가 언제냐고 묻더라. 옛날 감성이 ‘찐’하다고. 기획 때부터 의도했다. 누구나 겪는 스무 살 청춘은 10대와 60대도 통하는 키워드라고 믿었다. 코미디란 장르도 그런 뜻에서 유용했다. 나이 떼고 함께 웃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나.”

―마지막 소소반점의 격투 장면(?)이 웃기긴 한데 꽤 길다.

“16초쯤 거둬냈는데도 4분가량 된다. 에어서플라이 ‘위드아웃 유(Without You)’ 거의 전곡이 나간다. 개인적으로 이 신은 매우 소중했다. 여기서 소소반점은 스무 살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꾀죄죄하지만 어른이 되는 지점. 깡패들은 세월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길 수 없는 존재. 결국 반점에서 쫓겨나듯 나이를 먹는다. 그 심정을 생각하면 그리 길지 않다고 생각했다.”

―스무 살 때로 돌아가고 싶나.

“흠, 리셋하고 새로 살 자신은 없다. 지금 정신상태 그대로라면 잠깐 가보고 싶다. 첫사랑을 한 번쯤 만나고 싶은 바람이랄까. 그립긴 한데 막상 돌아가면 또 아옹다옹하겠지. 그게 인생이니까. ‘스물’은 나이 들어도 별것 없으니 어깨 처져 있지 말자고 술잔 건네는 영화다. 지금 그 시절을 살건 지나왔건. 대단치 않아도 각자에겐 소중한. 그게 청춘 아닌가.”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