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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땅속으로 사라지는 김일성 父子동상의 비밀

입력 | 2015-03-26 03:00:00


주성하 기자

북한 나진특별시 시내 중심 광장은 요즘 김일성·김정일 동상 건립 막바지 공사로 분주하다.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 ‘태양절’을 계기로 성대한 제막행사도 열릴 것이다.

사실 나진 동상 건설은 많이 늦은 것이다. 평양 만수대 언덕에 있었던 김일성 동상은 김정일 사망 4개월여 만인 2012년 4월 코트 차림의 김일성과 김정일이 나란히 서 있는 동상으로 바뀌었다. 이듬해 김정일 동상은 잠바 차림으로 교체됐다. 김정일이 생전에 코트를 입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이후 각 지방도 경쟁적으로 김일성 동상을 김 씨 부자 동상으로 바꾸었다. 충성 경쟁에서 나진이 지각한 셈이다.

나진의 동상 공사장은 흰 가림막으로 둘러싸여 있다. 북한에서 가림막의 의미는 곧 “김 씨 일가 관련 시설물 공사이니 남이 보면 안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워낙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 충성심을 강요당해 늦은 밤까지 동원되다 보니 가림막 뒤의 ‘비밀’은 외부로 솔솔 샌다. 나진의 가림막 뒤에서는 크고 깊은 지하 대피소 공사가 벌어진다고 한다. 유사시엔 특수 제작된 승강기가 작동해 수십∼수백 t에 이르는 화강석 단과 동상을 땅속으로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란다.

동상 아래에 지하 대피소가 있는 곳은 비단 나진뿐만은 아닐 것이다. 만수대의 초대형 동상도 전쟁이 나면 땅속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1993년 초반 김정일 지시로 전쟁이 벌어지면 김 씨 일가의 동상 석고상 초상화 등을 대피시킬 ‘지하 보관고’ 건설이 전국적으로 진행됐다. 동상 지하 대피소도 이때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 김일성 동상 안보(安保)는 골치 아프지만 반드시 풀어야 할 오래된 숙제다. 대다수 동상은 시내 중심부에 있다. 주변엔 주요 기관 청사가 몰려 있어 전쟁이 나면 폭격이나 함포의 집중 공격을 받을 곳이기도 하다. 북한 당국엔 동상 파괴만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과거엔 전쟁 발발 시 각 지방 노동당 조직의 최우선 임무는 동상을 안전한 내륙으로 피란 보내는 일이었다. 그런데 동상은 너무 무겁다. 그렇다고 동상을 분해하는, 용납할 수 없는 ‘불경’을 저지르긴 엄두가 안 나는지라 결국 지하 대피소에 감추는 것으로 결론 낸 것 같다.

밖에서 보면 “그까짓 동상이 뭐라고” 싶지만 북한에서 동상은 ‘영생’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살아있는 김 부자를 상징한다. 그래서 만수대창작사에서 새 동상이 제작되면 김 부자를 맞이하듯이 거수경례를 붙이며 영접 의전이 벌어지고, 동상이 세워질 곳까지 이동할 때도 최고 호위를 받는다.

밤에 동상을 비추는 조명은 동상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북한은 수십 년래의 기록적인 가뭄으로 최악의 전력난을 겪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전깃불을 구경하지 못한 곳도 많고 기차도 달리지 못하고 있다.

이런 속에서도 전국의 동상은 전기를 최우선적으로 공급받는다. 그럼에도 발전소가 고장 나거나 태풍으로 송전선이 끊기는 등의 사고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동상 공급 전기를 도중에 몰래 따서 쓰다 합선을 일으키는 ‘반동놈’도 있다. 이런 사태를 대비해 디젤 발전기가 준비돼 있다. 이 발전기는 사고가 발생하면 지체 없이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발전(發電) 대기 상태로 항상 돌아간다. 이게 다가 아니다. 디젤 발전기 고장 대비용 발전기가 또 있다. 돈이 적지 않게 들지만 여러 간부들의 목이 걸린 중요한 일이다.

북한이 연평도에 포사격을 했을 때 남쪽에선 “해주 김일성 동상을 깨부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타격하려는 순간 그 동상은 땅 위에 있을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론 외부에서 동상을 깨부수겠다는 주장엔 찬성할 수 없다. 다른 일은 몰라도 동상의 처분은 무조건 북한 주민들의 손에 맡겨야 한다. 남이 동상을 깨준다고 우상화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역효과만 난다. 우상화가 무너져야 동상도 무너진다. 이게 순리다.

해외에 파견됐다 탈북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인터넷을 안 순간부터 구글 검색창에 김일성, 김정일의 이름을 쳐보고 싶었습니다. 일주일을 고민했습니다. 알게 되면 집에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죠.”

그는 결국 진실을 알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했다. 예감도 맞았다. 동상이 상징하는 우상화가 단단해 보여도 실상은 진실의 볕이 쬐면 한순간에 녹는 얼음에 불과하다. 우상화가 사라진 땅이라면 동상을 지하에 감춘들, 지옥에 감춘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