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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건 기자의 인저리 타임]철퇴 아닌, 철퇴 같은…

입력 | 2015-03-17 03:00:00


▷열흘 전 개막한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에 ‘철퇴 축구’가 화제다. 팀당 두 경기를 치렀을 뿐이지만 윤정환 감독(42·사진)의 울산이 워낙 강렬한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울산은 8일 안방 개막전에서 최용수 감독의 서울을 2-0으로 누른 데 이어 15일 방문경기에서 황선홍 감독의 포항을 4-2로 격파하고 단독 선두로 나섰다. 윤 감독은 개막 전 미디어데이에서 올 시즌 목표를 10자 정도로 정리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철퇴 축구, 제2막 열다.”

▷철퇴(鐵槌). 말 그대로 쇠망치 또는 쇠몽둥이다. ‘철퇴를 가하다’나 ‘철퇴를 맞다’라는 표현처럼 주로 호된 타격을 주고받을 때 쓰인다. 울산 앞에 ‘철퇴 축구’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은 2009년 이 팀을 맡아 2012년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챔피언으로 이끈 김호곤 감독(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시절이다. 어느 팬이 “김호곤 축구는 무기로 치면 철퇴”라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어느새 ‘수비 위주의 경기를 운영하다 역습을 통해 한 방 내려치는 축구’라는 해석까지 따라붙었다. 김 부회장은 “팬들과 언론의 해석은 감사하지만 수비에 중점을 둔 것은 아니다. 빠른 공수 전환을 앞세워 공격적인 축구를 추구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윤 감독이 보여준 축구는 이전 울산의 ‘철퇴 축구’와 같았을까. 전문가들은 아닌 것 같다고 얘기한다. 김대길 KBSN 해설위원은 “전력이 크게 강화된 포항을 울산이 꺾은 것은 의외”라면서도 “과거 울산의 철퇴 축구와는 색깔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다섯 경기는 더 지켜봐야 하지만 ‘윤정환 효과’는 분명히 있다. 일본에서 여건이 좋지 않은 2부 리그의 사간 도스를 1부 리그 1위로 끌어올린 것은 그의 훈련 방식이 통했다는 얘기다. 울산은 선수도, 훈련 여건도 사간 도스보다 낫다. 반짝 돌풍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한국의 첫 방문 16강을 이룬 허정무 전 대표팀 감독(현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은 “철퇴 축구라는 게 도대체 뭡니까. 축구는 그저 축구일 뿐인데”라며 웃었다. 팬들과 언론이 흥미를 위해 만들어낸 수식어라는 것이다. 그런 허 부총재도 “초반에 윤 감독이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공수 전환도 빠르고 공격력도 훌륭했다. 전북이 ‘1강’으로 꼽혔는데 울산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윤 감독은 ‘철퇴 축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언론을 통해 접하긴 했지만 솔직히 일본에 있을 때라 (울산의) 철퇴 축구라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어떤 게 철퇴 축구인지도 모른다. 미디어데이에서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아 ‘이런 게 기사화가 되면 팬들이 흥미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한 말인데 일이 좀 커졌다(웃음). 그래도 내가 구상하고 있는 축구를 한다면 철퇴라는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철퇴 축구의 원조’ 김호곤 부회장의 말처럼 ‘빠른 공수 전환을 앞세운 공격 축구’는 대부분의 팀이 추구하는 현대 축구의 흐름이다. 특정 팀의 전유물일 수 없다. 김대길 위원 역시 “아직은 윤정환 축구를 잘 모르지만 울산이 현대 축구의 흐름에 맞는 경기를 보여준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철퇴 축구의 실체는 여전히 모호하다. 하지만 올 시즌 울산이 만만치 않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승건 기자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