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시간에 책읽는 학생들 왕따… “찌질하게 웬 독서” 비아냥-방해
서울 A고등학교에 다니는 정은영(가명·18) 양의 독백이다.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지적은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책을 읽는 친구를 무시하거나 비아냥거리는 분위기까지 생겼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학교 현장에서 나오고 있다. 과거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를 하지 않으면 따돌림을 받아 ‘닌텐도 왕따(닌따)’라는 말이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한 것처럼 독서하는 친구를 ‘책따’시키는 모습이 생긴 것이다.
“아빠가 저 대신 왕따당해 볼래요?” 회사원 박모 씨(45·경기 고양시)는 최근 중학생 딸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박 씨가 딸에게 “학교에서 틈틈이 독서 좀 하라”고 하자 딸이 “교실에서 책을 보면 친구들이 이상하게 본다. 왕따 된다”며 반발한 것. 옆에 있던 고등학생 아들도 거들었다. “책을 보는 것 자체가 올드패션, 즉 구닥다리처럼 여겨져 핀잔을 받게 돼요.”
▼ 스마트폰에 빠진 청소년… “책 읽으면 이상한 아이 취급” ▼
○ ‘책따’ 현상마저
이 같은 반응의 원인은 독서가 청소년 문화에서 워낙 드물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쉬는 시간이나 등하교 대중교통 내에서 독서한 적이 있나’와 ‘같은 상황에서 독서하는 친구를 본 적이 있나’는 질문에 각각 70명(72%)과 65명(67%)이 ‘없다’고 답했다.
○ 청소년과 책이 친해질 기회 절실
출판전문가들은 청소년의 매체 이용 문화가 바뀐 점도 또 다른 원인으로 분석했다. 지난해 여성가족부, 통계청 조사 결과 스마트폰 보급률은 36.2%(2011년)에서 81.5%(2013년)로 증가한 반면 청소년 독서율은 84.8%(2007년)에서 72.2%(2013년)로 하락했다. 책을 1년간 한 권도 읽지 않은 청소년이 4명 중 1명이나 됐다.
국내 청소년 독서진흥책이 지나치게 교육적 효과를 강조해 아이들에게 부담만 준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 동대문구 D중학교 교사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도서관에서 발표하는 청소년 권장도서가 내용과 의미를 중시하다 보니 아이들의 흥미와 동떨어진 책인 경우가 많다”며 “책에 대한 흥미를 높일 정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