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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친손녀 성폭행 혐의 할아버지, 1심-2심-대법 판결은…

입력 | 2015-03-06 15:29:00


“진짜 너무 슬프고 추하고 배신감 느끼고 더럽습니다. 어릴 때까진 믿고 의지했던 할아버지에게 2년째 이 짓을 당하고 있습니다.”

2010년 2월 당시 열한 살이던 A 양이 친할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며 한 포털사이트에 올린 글이다. A 양은 세 살 때 부모가 별거하면서 아버지 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오빠와 함께 사는데, 2년 전부터 할아버지가 집에서 몸을 만지고 성폭행을 일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A 양은 “같은 혈육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죠? 점점 더러워지는 제가 밉고 죽고 싶습니다”라며 “소설이 아니라 진심이에요.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적었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13세 미만인 손녀 A 양을 지속적으로 성폭행하고 추행해온 혐의로 기소된 A양의 친할아버지(73)에게 징역 12년과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80시간 이수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6일 밝혔다. 판결문과 A 양이 올린 글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2008년 당시 아홉 살이던 손녀를 성추행하기 시작해 3년 동안 파렴치한 범행을 이어갔다. 그는 A 양의 아버지이자 자신의 아들이 새벽 5시에 출근해 밤늦게야 집에 돌아와 실질적으로 손녀의 보호자인 점을 노려 마수를 뻗쳤다.

초등학생 A 양은 가장 안전해야 할 집에서 3년 동안 성폭행을 당하면서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아야만 했다. 처음 성추행을 당한 아홉 살 때는 극심한 수치심을 느껴 자살을 시도했지만 부모가 슬퍼할까봐 중단한 적도 있었다. A 양은 주변 사람들에겐 할아버지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입을 열지 못하고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에라도 익명으로 글을 올려 심경을 토로했다.

A 양을 향한 할아버지의 패륜적인 범죄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대담하졌다. 그는 자신의 아내이자 A 양의 친할머니가 보는 앞에서도 공공연히 성추행을 일삼았다. A 양 아버지가 집에 있는 주말에도 방에서 손녀를 돌봐준다며 성폭행하기도 했다. A 양은 포털사이트에 “소심한 성격이라 할아버지가 다가오면 자는 척하면서 밀어내는데 억지로 붙잡고 해요. 이거 성폭행 맞죠?”라고 물으며 “할아버지가 운전 요리 같은 집안일을 다 해서 어떻게 할 수도 없어요”라고 적었다.

A 양은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11년 따로 살던 어머니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놨지만 정신적 혼란만 더 커져 심리적 공황까지 겪었다. A 양 어머니에게 거센 항의를 받은 할아버지를 비롯한 친가 가족들이 A 양의 고백을 거짓말로 몰아세웠기 때문이다. 결국 A 양 어머니는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1년여 뒤 A 양은 중학교에 올라가서 받은 정서행동발달검사에서 자살 위험이 높은 상태로 판정받았고, 상담 과정에서 사건을 전해들은 자살예방센터 상담사가 수사기관에 제보하면서 할아버지는 철창신세를 졌다.

할아버지는 1심에서 모든 혐의를 자백했지만 사설변호사를 선임한 2심에서 돌연 말을 바꿨다. 1심 진술은 국선변호사가 강요해 허위로 자백한 것이고, 손녀가 아토피 질환을 심하게 앓아 목욕을 시켜주고 몸에 약을 발라줬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A 양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해 징역 12년을 선고한 1심을 유지했고 대법원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A양의 할아버지는 출소하더라도 전자발찌를 차지 않게 된다. 법원이 그가 성범죄 전과가 없고 재범위험성 점수가 중간 수준인데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범행한 게 아니라는 점과 성폭력 치료로 성충동이 완화될 여지가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재범을 저지를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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