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녕 논설위원
노무현이 김한길에게 “김 대표님. 이번엔 이 대표 손들어 주시죠. 야당 원내대표 하기 힘드는데 양보 좀 하시죠”라고 말하면서 두 사람 간에 언쟁이 시작된다. 당시 사립학교법 재개정 문제로 여야가 대립하면서 국정이 마비 상태였다. 이재오가 민망해 내실의 화장실로 잠시 자리를 피했는데 그곳까지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두 사람은 언성을 높여 다퉜다. 김한길이 “당에 보고하겠다”며 가버리자 노무현은 이재오를 데리고 직접 청와대 경내를 구경시켜주었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 이 의원한테 직접 들은 일화다. 그는 한참 뒤인 2013년 8월 자신의 트위터에 이를 소개했다. 우리 정치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다.
나는 6년 전쯤 여야 간 협상 사령탑인 원내대표들이 마치 남북회담 하듯 어렵게 만나는 행태를 ‘여야 분단정치’라는 칼럼으로 비판한 적이 있다. 주례회동이 정착된 지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사실 이렇게 된 지도 8개월밖에 안 된다. ‘한 발을 디디니 길이 생겼다’는 말이 실감난다. 길이 만들어지면 주고받는 것이 생기고 소통이 싹튼다. 혹독한 인사청문의 시련을 거친 이완구 총리가 첫 인사차 야당을 찾았을 때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눈물을 보인 것도 그 길에서 싹튼 정 때문 아니겠는가.
나는 우리 국민의 메마른 정서와 갈등의 상당 부분이 정치 탓이라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손가락 하나로 세상의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시대에 허구한 날 편을 지어 저주에 가까운 증오를 표출하는 정치를 보면서 무엇을 체득하겠는가. 그런 살벌한 적대(敵對)가 정치의 본령인가. 그런다고 자신의 위상이 올라가고 더 좋은 세상, 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나. 증오도 은혜와 마찬가지로 되로 주면 말로 돌아오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지금껏 아무도 가보지 않은 새 길을 내보기를 바란다. 두 사람은 여느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관계와는 다르다.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대통령후보로 나서 겨룬 사람이다. 국민통합도 약속했다. 박 대통령은 51.6%, 문 대표는 48%를 득표했다. 혼자서는 아무리 애써봤자 반쪽 통합밖에 못 이루지만 둘이 의기투합하면 100% 통합에 다가갈 수 있다. 박 대통령의 경제 활성화를 통한 성장, 문 대표의 소득주도 성장은 어느 한쪽을 택하면 다른 쪽은 버려야 하는 양자택일의 카드가 아니다.
때마침 문 대표가 어제 “청와대 개편이 끝나면 박 대통령에게 경제와 안보 관련 회담을 제의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고무적이다. 사실 더 아쉬운 쪽은 박 대통령이니 이런 제의를 해도 먼저 하는 게 옳다. 그러나 한 번의 형식적인 만남으로는 부족하다. 두 사람이 아무 조건 없이 한 달에 한 번, 또는 두 달에 한 번이라도 만나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그런 식으로 새 길을 내면 정치가 달라지고, 국민의 눈빛이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