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동거녀 가족 엽총 살해 이면엔 분노조절장애
분노조절장애는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에서 감정 조절에 실패해 분노를 병적으로 표출하는 것을 뜻한다. 사소한 자극에 과도한 반응을 보이고, 이성적 판단이 흐려지며 분풀이 대상을 찾게 된다. 강 씨뿐만 아니라 분노조절장애가 살인 등의 범죄로 이어진 사례가 최근 잇따르고 있다.
25일 서울 강남구의 한 고깃집에서는 택시운전사 김모 씨(51)가 칼로 동료 택시운전사 이모 씨(39)의 옆구리를 찔렀다. 경찰에 따르면 오른팔에 장애가 있는 김 씨는 나이가 한참 어린 동료가 자신의 장애를 비하하고 욕설을 했다는 이유로 범행을 저질렀다. 김 씨는 과거에도 이 씨와 말다툼을 벌인 적이 있지만 이날은 화를 억누르지 못해 살인을 시도했다. 13일에는 강남구의 한 떡볶이 가게 주인 신모 씨(53)가 음식 타박 등을 이유로 손님 차모 씨(50)를 식칼로 33회 찔러 살해했다. 신 씨를 자극한 차 씨의 발언은 “어묵 국물이 짜다” “주제 파악을 못한다” 등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신 씨는 만취한 차 씨를 가게에서 재우는 호의를 베풀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 순간적으로 격해진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살인자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신 씨의 가게는 장사가 잘 되지 않아 가게 문을 닫는 날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궁기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두 사례 모두 자신의 약점(장애, 영업 부진)을 건드린 자극을 견뎌내지 못했고, 이성이 살인 충동에 압도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범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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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분노조절장애 증상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09년 3720명에서 2013년 4934명으로 32.6%가량 늘어났고 최근에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분노조절장애 원인으로는 유전자 문제, 뇌혈관 질환 후유증 등 의학적 원인과 생각을 표출하지 않으면 손해라는 인식의 팽배, 경쟁을 강요하는 풍조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 등이 꼽히고 있다.
심리학자들은 분노조절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분노 상황을 잠시 잊고 △화를 다스릴 수 있다고 스스로 격려하며 △가족 등에게 위로를 받으라고 조언했다. 양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순간적으로 갈등 상황에 몰입하지 말고 관조적으로 상황을 살필 수 있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윤철 trigger@donga.com·박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