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선별적 ‘콜’허용 이후 특정 선호지역에 기사들 몰려 불러도 안 오고 웃돈 주고… 소비자 기사 업체 모두 불만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대리운전기사 권익 보호 차원에서 ‘대리운전 목적지 공개’ 결정을 내리면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목적지 공개는 대리운전 정보업체에서 기사들에게 출발지와 도착지 등을 공개하고 선별적으로 ‘콜’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
공정위는 8월 부산에서 가장 규모가 큰 T대리운전업체를 상대로 ‘대리기사에 목적지 미제공’은 불공정 행위라고 경고했다. 업체가 목적지 없이 콜 정보를 기사에게 제공한 뒤 목적지를 확인한 기사가 스스로 배차를 취소했을 때 불이익(1∼3일 배차 정지 등)을 주는 것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에 위반된다고 통보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 특정 선호지역에 기사들이 몰리면서 콜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자 대리기사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늘고 있다. 대리기사 김모 씨(48)는 “모두가 운전하기 좋은 목적지를 골라 일을 하다 보니 콜 받기도 쉽지 않고 수입도 예전만 못하다”고 불평했다.
다툼도 끊이지 않아 업체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리기사가 오지 않거나 시간 지연으로 욕설을 하는 것은 예사고, 싸움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도시 외곽 등 기피 지역에 사는 소비자들은 “대리운전 서비스가 엉망이다. 앞으로 이용 안 한다”는 등 항의하기 일쑤다. 업체들은 콜 취소율 증가, 고객 이탈, 회사 이미지 추락 등으로 인한 경영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이번 공정위 결정은 대리운전 서비스의 주체인 소비자를 뒷전에 둔 채 업체와 기사 관계에만 초점을 맞춘 것으로 결국 고객 피해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공정위의 잣대대로라면 택시 기사들이 자신의 권익을 위해 목적지에 따라 승차 거부를 해도 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대리운전이 일상 서비스로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관련법이 없는 것도 문제다. 수년 전부터 법 제정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국회에서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요즘 대리운전 기피나 웃돈 요구 등 민원이 많지만 지도·단속할 법이 없고, 담당 부서도 없다”고 말했다.
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