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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두 악마 중 덜 나쁜 것을 고른 것”

입력 | 2014-11-06 03:00:00

[미 중산층 현장보고서 아메리칸 드림은 없다]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보스턴대 사회학 박사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보스턴대 사회학 박사

미국 중간선거가 주요 언론과 전문가들의 예견대로 공화당의 우세로 막을 내렸다. 8년 만에 맞는 첫 여소야대다.

이번 선거는 집권 2기를 맞은 버락 오바마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이자, 2016년 차기 대선의 향방을 가늠하는 잣대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하지만 저조한 투표율이 말해주듯 정작 미국인들에겐 관심 밖의 아주 밍밍한 이벤트였다. 필자가 경험해 본 이전 선거와 비교해도 선거에 임하는 시민들의 반응은 확실히 냉담했다. TV에서는 선거 관련 광고가 홍수처럼 쏟아졌지만 과거 선거에서 자주 보던 길거리 유세와 피켓 등은 거의 보지 못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곳이 로스앤젤레스라는 대도시인데도 말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키워드는 정치권을 향한 ‘분노’와 ‘불신’이라고 생각한다.

미 중간선거는 그동안 집권 여당엔 무덤이나 다름없었다. 대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데다 여당 지지자들은 투표에 소극적인 반면 야당 지지자들은 적극적이게 마련이다. 특히 재선 대통령인 경우에는 정권에 대한 권태·피로감까지 겹쳐 백이면 백 손해 보는 장사였다.

이번엔 좀 더 다른 요인이 뚜렷하게 보인다. 우리도 그렇지만 지금 미국도 국민들 사이에 정치 혐오가 유례없이 높아지고 있다. 여당뿐 아니라 야당까지 아우르는 정치권 전반에 대한 실망과 좌절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우선 오바마의 실망스러운 국정 운영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다.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테러와 참수에 대한 무능한 대처, 러시아에 빼앗긴 주도권, 우왕좌왕하는 에볼라 대처, 오바마케어(건강보험)에 대한 불만, 국세청과 재향군인 의료 스캔들 등 그동안 헛발질로 일관했던 워싱턴의 패착이 ‘반오바마 정서(anti-Obama feelings)’를 만들어냈다. 이런 상황인데도 아무런 감시와 브레이크 노릇을 하지 못하는 집권 여당과 야당에 대한 무차별적 ‘반현역의원 분노(anti-incumbent anger)’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오죽했으면 민주당 하원의원 닉 러홀은 “국가가 더이상 자기편이 아니라 오히려 적이 되어 가고 있다고 느끼는 미국인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을까.

선거 며칠 전에 있었던 CNN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무려 68%가 “미국이 잘못 가고 있다. 화가 난다”고 답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NBC가 함께한 여론조사도 응답자의 3분의 2가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구미가 당기는 후보는 없고, 공허하기 짝이 없는 선거공약만 난무하고 있다. 대책 없는 양 정당에 신물이 난다” “경제적으로 힘든 유권자에게 해결책을 주어야 할 정치가 더이상 기댈 언덕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유권자들의 말을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화당이 그나마 선전한 것은 공화당이 예뻐서가 아니라 차악책을 고른 결과란 분석이 힘을 받는다. 민주당 여론조사 담당관인 프레드 양은 선거 직전 “공화당이 선전한다면 공화당이 잘해서라기보다 국민들이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두 악마 중 덜 나쁜 하나를 고른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미카 로버츠 공화당 여론조사 담당관도 “미국인 대다수가 여야 할 것 없이 ‘식물정치(political gridlock)’와 불황의 늪에 깊이 빠졌다고 느끼고 있다”고 했다.

미국인의 분노가 향한 두 번째 지점은 바로 그가 지적한 불황의 늪, 즉 살림살이의 팍팍함이다.

이번 중간선거는 ‘경제’가 이슈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과거 중간선거와 비교된다. 뉴욕타임스가 보도하듯 선거에서 경제가 이슈가 된 것은 대선이지 중간선거가 아니었다. 중간선거는 대통령 국정 운영에 대한 심판 성격이 크다 보니 대통령 인기도에 따라 상하 의원 수가 늘었다 줄었다 한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달랐다. 여론조사업체 사장인 게리 랭거는 블룸버그에 나와 “국민들의 경제 불만족이 정치에 지대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미국인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에도 불만족스럽다는 것을 표현하는 ‘이중 타격’을 하고 있다”고 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도 “정부는 연일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고 발표하고 있으나 국민들의 체감경기는 저조해서 경제적 불안감(feeling insecure)이 고조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내년에 경기가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 응답자는 고작 27%였다. 또 응답자의 4분의 3이 “자식 세대가 내 세대보다 더 나아지리라는 확신이 없다”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미네소타 주의 한 여성 유권자의 말을 소개하고자 한다. 건강이 나빠 일을 더이상 하지 못한다는 58세 주부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가족은 스마트폰은커녕 아직도 2G 폴더 휴대전화를 쓴다. 차는 굴러만 가는 오래된 똥차다. 식료품점에서 일하는 남편은 일하느라 등골이 빠질 지경이다. 가족이 함께 일요일에 교회에 가본 지도 오래됐다. 추수감사절? 휴일? 그건 남의 일이다. 남편이 휴일에도 일하지 않으면 우리 가족은 살아남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미국의 어떤 정치인도 우리 같은 소시민이나 중산층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보스턴대 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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