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산골에 터 잡은지 2년,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과 작은 공동체 만들어 의지하고 가족같은 情 나누며 오순도순 한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소박한 미술관도 세워 마을을 행복한 삶터이자 일터, 쉼터로 가꾸고 싶어
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마을을 만든다는 일차적 의미는 ‘관계’를 만든다는 뜻이다. 무너진 관계를 회복해 동네를 이루고, 거기서 어울림의 기쁨을 맛보며 살아가는 삶을 뜻한다. 꽃길을 가꾸는 일로 시작하든, ‘얼굴 있는 먹거리’ 운동을 펼치든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기쁘게 살아가는 게 궁극의 열망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공동체적 자아(communal self)를 가지고 태어나기도 하고, 공동체적 삶이 시장(市場)이나 정부(政府)보다 때로 효율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어 있다.
얼마 전 필자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보았다. 주거공동체가 어떤 규모일 때, 주민들이 가장 애착과 신뢰를 느끼는지 조사했다. 20명 규모의 동네, 가구로 따지자면 일곱 집 정도가 모여 사는 동네에서 뚜렷하게 만족감이 가장 높았다. 산골의 자연부락이든, 도시의 땅콩 주택이든 그 정도 규모로 주거공동체를 가꿀 때, 서로 사람 귀한 걸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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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내가 꿈꾸는 마을은, 아름다운 풍경에 감동하고, 서로 의지하며, 미술관을 하나 가꾸는 모습이다. 거창한 미술품이 없더라도, 화가와 목수 서너 명이면 족하다. 그런 분들의 작업실이 군데군데 있는 것만으로 동네에는 꽃이 피어날 수 있다. 예술을 매개로 하는 마을 만들기가 세계에서 봇물 터지듯 하는 게 우연이 아니다. 예술을 매개로 하는 동네 만들기야말로 삶터와 일터 그리고 쉼터를 창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이다.
1년 전 나는 이 구상을 시골의 동네 사람에게 말해 보았다. 반응은 무심했다. 이제까지 그런 것 없이 잘 살아왔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이미, 일은 시작되었다. 화가 한 분이 벌써 들어왔고, 틈날 때마다 나는 화가와 목수를 만나고 있다. 누가 알겠는가? 서너 명의 예술가가 들어오고, 훗날 미술관 하나라도 세워지게 되면, 우리 동네는 일본이나 스위스의 유명한 마을보다 더 반짝이는 곳이 되지 않을까. 미술관 하나로 모두 가보고 싶어 하는 명소가 된 일본의 예술 섬 나오시마나 스페인의 빌바오처럼 이 땅에 보석처럼 빛나는 미술관을 만드는 일이 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무역규모로 따지면 세계 8위, 경제력은 13위, 국가경쟁력은 22위의 국가다. 그러나 행복에 있어서는 97위를 기록하고 있다. 정치권력의 구조를 바꾸는 싸움만으로 이것을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름다운 마을을 가꾸고 삶터의 공동체성을 회복해 기쁨을 누리는 게 필요하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 동안 노동을 하며 적금을 붓고, 그 돈으로 유럽의 아름다운 마을로 여행을 가서 10박 11일에 다 쓰고 오는 여행을 계속할 수는 없다. 우리가 이제 그런 마을을 만들고 살아야 한다. 이 어려운 시대, 그런 꿈조차 즐겁지 아니한가.
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