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광암 산업부장
이 같은 ‘포식본능’은 구글이 줄기차게 잘나가는 원동력이다. 구글이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이라고는 하지만, 안드로이드나 유튜브를 인수하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구글은 없을 것이다.
T렉스가 북아메리카 대륙을 주름잡던 시절, 아시아 대륙의 지배자는 타르보사우루스 바타아르(T바타아르)였다. 할리우드로부터 멀리 떨어진 탓에 지명도는 낮지만 사냥 솜씨에서는 결코 T렉스에게 뒤지지 않던 육식공룡이다. 만약 영화 ‘쥬라기공원’에서 T렉스와 T바타아르가 경쟁적으로 사냥감을 쫓는다고 생각해보자. 모든 초식공룡들과 다른 육식공룡들은 숨이 멎는 공포를 느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 최근 세계 ICT산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중국의 울타리를 부수고 글로벌 무대로 뛰어나올 준비가 끝난 인터넷 공룡은 알리바바뿐이 아니다. 중국판 페이스북 텅쉰과 검색 포털 바이두는 이미 홍콩 증시와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상태다. 이들 중국 3대 인터넷기업의 시가총액은 460조 원에 이른다. 거기에 비하면 네이버, 엔씨소프트, 넥슨 등 한국 3대 인터넷기업의 시가총액은 34조 원. 초라한 금액이다. 하드웨어 분야에 삼성전자가 버티고 있다고 하지만 중국의 샤오미 등 후발주자가 뒤쫓아 오는 속도는 매우 위협적이다.
지금까지는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우리 산업이 처한 상황을 가리키는 용어로 ‘넛크래커(호두까기)’가 널리 쓰였다. 앞서가는 일본과 뒤쫓아 오는 중국 사이에 낀 괴로운 처지를 상징하는 말이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따라 배울 일본이 있고 적당한 거리로 뒤쫓아 오는 중국이 있는 구도는, 앞뒤로 페이스메이커를 둔 마라톤 경기였다. 적당히 긴장되면서도 한편으로는 편안한 ‘골디록스’였다.
세월호특별법 논란에 가로막혀 한 걸음도 못 내딛는 정국, 대통령이 나서도 외국인들이 ‘천송이 코트’ 살 수 있게 해주는 데 몇 달씩 걸리는 철벽 규제, 회사가 분기 1조 원이 넘는 손실을 내도 아랑곳하지 않고 임금을 올려 달라고 떼를 쓰는 노조문화를 보면, 산업의 지질연대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넛크래커 시대가 좋았다”는, 고통에 찬 탄식이 터져 나올 날이 머지않은 느낌. 필자만의 기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