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와 함께 하는 대한민국 헌법 이야기]제10조
허완중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 헌법 제2장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가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고 실현하기 위함에 있다는 의미이다.
국민 개개인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생활영역에서 자유롭게 개성을 신장하고 최소한의 물질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실현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헌법의 이념적 출발점이자 핵심적 가치이다. 나아가 인간의 존엄성 보장은 국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국가는 그 자체로 독자적인 가치가 있거나 목적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더욱 잘 실현할 수 있는 도구의 기능을 가질 뿐이다. 국민의 생명을 경시하는 국가, 국가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국가가 정당성을 갖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보장은 물질적인 최저생계의 보장에서 출발한다. 개인이 스스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면 인간의 존엄은 구두선에 머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는 자력으로 살아갈 수 없는 국민에게 물질적 급부를 통해 최저생계를 보장하여야 하며 세금을 부과할 때도 늘 국민의 생계능력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의 일은 아니지만 독일의 경우 망명 신청을 한 외국인에게 독일 국민에게 지급하는 최저생계비보다 적은 액수의 생계비를 지급하는 것에 대해 독일연방헌법재판소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차별대우라고 판단한 것은 인간 존엄성의 헌법적 의미와 관련해 우리에게도 큰 시사점을 준다.
존엄사의 문제도 인간의 존엄과 관련하여 생각해 보아야 한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그 과정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거나 남은 가족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는 이유로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존엄하게 죽는 길을 선택하는 것을 ‘존엄사’라고 한다. 실제로 치료 과정에서 식물인간이 된 어느 할머니에게서 인공호흡기를 떼어 달라고 자녀들이 요구한 적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대법원은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을 허용하는 판단을 하였다. 환자가 의식이 있을 때에 미리 생명 연장을 위한 의학적 조치를 하지 않도록 당부하였고 의학적으로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는 객관적 진단이 내려져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조치를 중단하였다면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죽음의 과정에서 본인의 확고한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다른 사람의 치료를 위한 장기적출 역시 인간의 존엄성에 어긋난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우리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우리 헌법에서도 가장 앞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그럼에도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는 가장 낯설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느껴지는 개념이기도 하다. 국가가 세우는 모든 정책과 활동은 그 주파수를 “인간의 존엄성”에 민감하게 맞추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선언이 헌법의 최고 이념이자 국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허완중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