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원 논설위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 씨 옆에서 이틀째 함께 단식을 벌이던 20일 배포한 글이다. 문 의원은 “그들(유가족)의 아픔을 위로하고 치유해 주기는커녕 고통을 더한다면 그것은 국가의 도리가 아니다”는 말도 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유족들의 아픔을 나눠 지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의도가 선(善)하다고 결과도 항상 선한 것은 아니다. 이날 저녁 유가족들은 여야 간에 타결한 특별법 2차 합의안마저 거부하고 되레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는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 구성 요구를 고수하기로 결의했다.
지난 대선 후보였고 당의 최대 계파인 친노·강경파의 수장이 당을 대표해 국정 현안을 우여곡절 끝에 타결한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을 벼랑 끝에서 흔들어대는 꼴이다. 박 원내대표는 결국 재협상 요구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유족들의 동의는 어느덧 여야 간의 2차 합의에도 불구하고 새정치연합의 발목을 잡는 족쇄처럼 돼버렸다.
유족들이 요구하는 진상조사위의 수사권 기소권 부여는 형사사법 체계에 어긋나는 것임을 율사 출신인 문 의원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국가운영의 법치주의 원칙을 유족들에게 설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기보다는 당의 선택을 어렵게 만들 수 있는 포퓰리즘 행태를 보이고 있다. 자신만이 국민의 아픔을 함께하는 대통령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의구심을 살 만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전에 “야당은, (질 땐)지라고 국민이 야당을 만들어준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강경한 장외투쟁론이 현실론적인 원내투쟁론을 압도할 때 쓰던 말이다. 130석을 보유한 제1야당이 국정에 책임을 지지 않는 시민단체처럼 행동한다면 정말 힘든 사람들에게 혜택과 치유를 가져다주기보다는 되레 고통만 더해줄 수 있을 것이다.
상황이 꼬인 데는 박 원내대표가 처음엔 청와대까지 찾아가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유족들의 기대를 한껏 부풀리는 강경투쟁을 하다 종국엔 당과 유족 설득도 없이 특별법안에 덜컥 합의하는 냉온탕식 리더십을 보인 데도 원인이 없지 않다. 그렇다 해도 대통령 후보까지 지낸 사람이 당 밖의 강경론에 영합하고, 타협과 법치라는 의회민주주의의 해법을 경시하는 자세를 보인다면 새정치연합에도, 나라에도 이롭지 못한 일이 될 것이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