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
광복(光復)과 해방(解放). 언중의 느낌과 쓰임은 다르다. 그런데 우리 사전은 동의어처럼 다루고 있다. 국립국어원 웹사전에 올라 있는 ‘광복을 맞이하다’ ‘일본의 항복으로 우리는 해방을 맞았다’는 예문만 보더라도 그렇다. 광복도, 해방도 전부 ‘맞았다’고 한다.
거부감이 있다. 광복에는 우리 민족의 항거와 저항이 들어있고, 해방은 외세의 힘으로 풀려났다는 의미가 강하다. 2003년 3월 미국이 영국 등과 함께 이라크에서 벌인 전쟁이 외세에 의한 해방전쟁이다. 하지만 3·1운동이 말해주듯 우리 조상들은 국내외에서 끈질긴 항거와 무장투쟁을 벌였다.
해방둥이.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1945년에 태어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이 역시 ‘광복둥이’로 고쳐 쓰면 어떨까. 그들도 ‘해방된 조국’보다는 ‘광복된 조국’을 더 자랑스러워할 테니.
‘종군위안부’라는 용어도 써서는 안 될 말이다. 일본군의 성노예로 고통을 당한 그분들을 또 한번 울리는 말이다. 종군(從軍)은 종군기자라는 쓰임에서 보듯 ‘자발적으로 군을 따라다닌 것’을 의미한다. 정신대(挺身隊) 역시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부대’라는 뜻이다. 종군위안부나 정신대는 일본이 왜곡한 말이다. ‘일본군 위안부’나 더 정확히는 ‘일본군 성노예’로 쓰는 게 옳다. 한때 ‘정신대’를 ‘일본군 성노예’와 혼동하기도 했으나 정신대는 ‘근로정신대’를 의미한다.
내년은 광복 70주년,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다. 그런데도 나라를 빼앗겼던 아픈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다. 영화 ‘명량’은 이순신이라는 영웅을 더 큰 인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전쟁 영웅이 나올 때는 언제나 민초와 산하가 유린당했다는 걸 보여준다. 영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영웅이 필요 없는 나라를 만드는 것 아닐까.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