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6년만에 소설집 펴내 ◇신중한 사람/이승우 지음/336쪽·1만3000원·문학과지성사
아홉 번째 소설집 ‘신중한 사람’을 펴낸 소설가 이승우. 세상의 억지와 불합리와 막무가내를 못 견뎌하는 인물들이 주저하고 우회하면서 결국 그 부조리를 유지시키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험상궂은 인상의 세입자는 Y의 이웃과 작성한 임대차 계약서를 내밀며 막무가내로 버틴다. Y는 신중했기에 일을 시끄럽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루 1만 원씩 한 달 월세를 내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다락방에 기거하며 집의 예전 모습을 찾으려고 정원을 가꾸고 연못을 손본다. 본질을 따져 밝히는 것보다 외형을 복원하는 일이 스스로 더 편하기 때문이다.
‘리모컨이 필요해’에서 떠돌이 시간강사인 ‘나’는 글쓰기 강의를 하기 위해 지방의 낡은 여관방에 머무른다. 새벽마다 켜지는 텔레비전 알람을 끄려면 리모컨이 필요한데 원래 없다는 여관 주인의 퉁명함에 항의하기를 주저한다. 이미 이불 속으로 들어간 주인 남자를 귀찮게 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어디에도 없는’의 백수 ‘유’는 나그네여관에 머물며 타국의 비자를 기다리지만 기한이 다 되도록 아무 소식이 없다. 유는 비자센터를 찾아가 토로한다. “난 여기 없는 사람이라니까. 그런데 왜 이래. 있지도 않은 사람한테 왜 이래.” 비자센터 직원은 더 기다리라고, 다른 방법이 없다고 기계적으로 답할 뿐이다.
뭔가 억울하지만 무엇이 억울한지 선명하지 않고, 화가 나지만 대상이 뚜렷하지 않다. 불안은 무기력을 부른다. 작가는 제자리를 맴도는 현대인의 엉클어진 내면을 편집증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집요하게 그려낸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느라 행동하지도 즐기지도 못하는 내 인물들을 보면 언짢고 속이 상한다. 그들에게 미안하다. 나는 그들을 사랑하지만, 사랑하는데도, 그들에게서 세상의 고뇌를 벗겨내지 못했다.’(‘작가의 말’)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