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적한 현안 안고 있는 대통령… 필요한 건 쓴소리보다 지혜 세상에 제갈량 같은 賢者 없어… 집단지성의 조직 만들어 부족한 점 서로 보완하게 할 뿐 지금 청와대 참모조직은 대통령 현명하게 보좌할 리더십-시스템이 있는가
김병준 객원논설위원·국민대 교수
한 바퀴 다 돈 뒤 불편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쓴소리 바른 소리, 들을 만큼 듣고 있다. 인터넷 통해 대통령 욕하는 것까지 다 읽고 있다. 오늘 하신 말씀들도 듣고 또 들은 이야기들이다.” 원로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어진 대통령의 말.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쓴소리 바른 소리가 아니다. 국정을 잘 운영할 수 있는 지혜다. 필요한 사람도 쓴소리 바른 소리 하는 사람이 아니다. 지혜를 가진 현자(賢者)가 필요하다. 혹시 그런 현자를 알면 소개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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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흔히 말하듯 대통령이 되고 나면 모두 쓴소리 바른 소리에 귀를 막는 것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싫다고 무조건 배척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또 논리적으로 그럴 수가 없다. 생각해 보라. 대통령은 늘 문제를 안고 산다. 쉽지 않은 문제들이자 국민과 역사 앞에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들이다. 당연히 고심이 깊다. 때로는 영혼의 일부를 팔아서라도 해결하고 싶어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야당에 대연정을 제안한 일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였다. 대통령직이란 그 자체로서 그렇게 무겁다.
이런 자리에 있는 대통령이 쓴소리 단 소리를 가릴 리 없다. 병이 심한 환자가 쓴 약 단 약을 가리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쓰기만 할 뿐 지혜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외람된 말이지만 앞서 소개한 원로들의 말씀도 바로 그런 경우다.
다시 한 번, 대통령이 필요로 하는 것은 쓴소리 바른 소리가 아니라 지혜다. 그러면 이 지혜는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단순하게는 현자를 모시는 방법이다. 이를테면 제갈량 같은 인물을 모시면 된다. 그러나 이처럼 복잡한 세상에 그런 현자는 없다. 모두들 이것에 밝으면 저것에 어둡고, 이 일에 능하면 저 일에 부족하다.
차선은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집단지성으로서의 ‘지혜로운 조직’을 만들어 옆에 두는 것이다. 즉 조금씩 부족한 사람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어 서로를 보완해 가게 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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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게 그 이유를 상상해 본다. 정책이나 국정현안을 잘 아는 사령탑이 없거나, 있어도 의견을 조합하고 조율하는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래서 참모들 사이에 높은 칸막이와 상호 불가침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것 아닐까? 그 결과 지혜가 아닌 참모 각자의 부족함과 편견이 걸러지지도 않은 채 대통령에게 전달되고 있고.
모두들 대통령이 권위적이라 한다. 그 앞에서 말을 제대로 못한다고 한다. 그럴수록 참모들 간 자유로운 대화와 의견 교환은 더욱 중요하다. 더 큰 지혜로 대통령을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묻는다. 참모들 사이의 이런 대화와 의견 교환을 촉진하는 리더십이나 시스템이 청와대 참모조직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일까?
모두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하지만 문제가 있는 것은 틀림없다. 무엇을 어떻게 고치든 고쳐 주었으면 한다. 청와대를 ‘지혜로운 조직’으로, 또 대통령의 현명함을 더하는 조직으로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국민도 그렇다. 중요한 것은 쓴소리 바른 소리가 아니다. 지혜와 지혜로운 조언이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지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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