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경제학/센딜 멀레이너선,엘다 샤퍼 지음·이경식 옮김/476쪽·1만8000원·RHK
결핍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리포트 제출 시한이나 프레젠테이션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고도의 집중력이 발휘된다. 결핍이 가져온 힘이다.
하지만 하나만 보고 달려가면 나머지를 놓칠 수 있다. 터널에 들어가면 멀리서 빛나는 출구만 보이고 주변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1998년 정해진 날짜에 우주선을 쏘는 데 집중하느라 프로그램 오류를 점검하지 못했다. 우주선은 화성에 도착했지만 아무 정보도 전송하지 못했다.
사납고 완강한 결핍의 덫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미리 계획을 세우고 언제라도 닥칠 수 있는 결핍의 충격을 제어할 수 있는 느슨함을 가지라고 저자들은 조언한다.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도 마찬가지다. 미국 세인트존스병원은 32개 수술실의 일정이 꽉 차 있어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예정된 수술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병원이 초빙한 자문관은 수술실 하나를 비우라고 처방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비운 수술실은 응급환자로 채워지고 나머지 수술실은 예정된 수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얼마 안 가 수술 건수는 5.1% 늘었고 오전 3시 이후의 수술은 45%나 줄었다.
결핍을 가져온 원인을 분석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주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결핍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은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없어도 될 것이 많을수록 부유해진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