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 나라… 사회정의는 결국 조화의 문제”
이종은 국민대 교수는 “개인적 차원의 복수를 의미하던 정의가 사회적 차원의 정의로 변천하는 사상사 측면을 세밀히 다뤄 정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넓히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정의 열풍이 한풀 꺾였다. 늦은 감이 있다.
“2010년 ‘정치와 윤리’, 2011년 ‘평등 자유 권리’에 대해 책을 썼다. 정의를 알기 위해 3층짜리 건물을 하나씩 쌓아간다는 마음으로 저술한 것이다. 이제 3층인 ‘정의에 대하여’가 나온 것뿐이다.
“표지 그림을 보자. 한 남자가 사람을 죽이고 도망간다. 뒤에는 천사 2명이 있다. 하나는 ‘정의의 신’이고 또 다른 하나는 ‘복수의 신’이다. 그림엔 정의(正義)를 한 가지로 ‘정의(定義)’하지 말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소크라테스부터 시작된 고대의 정의는 복수의 개념이었다. 당한 만큼 보복하자는 것이다. 고대의 정의는 개인과 개인의 문제였다. 하지만 사회와 개인, 사회와 사회의 문제가 생기면서 사회정의가 중요하게 됐다. 핵심은 정의의 관점은 시대와 장소, 사람에 따라 계속 바뀌었다는 점이다.”
―책에선 결국 사회정의를 강조하고 있다.
“정의는 시대, 장소,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지금 시대는 사회정의가 절실하다. 거리에 탑을 세운다고 치자. 인부 100명이 하루 동안 탑을 세웠다. 일당 10만 원씩 100명에게 1000만 원 주면 끝이다. 하지만 노동자 한 사람이 10만 원씩 100일 주면 탑을 세울 수 있나? 불가능하다. 개개인에게는 일당 10만 원이 주어졌지만 100명이 협동한 노력에 대한 것은 지불되지 않았다. 즉 과거와 달리 요즘은 모두의 협업으로 유지되는 사회인 만큼 누군가 소외되거나 굶어죽으면 안 된다고 보는 것, 많은 사람에게 골고루 혜택이 가는 것이 사회정의다.”
―우리 사회에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다른 두 가지는….
“응분과 필요다. 응분은 열심히 하면 좋은 성과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의 경우 노력과 성과가 부족하니 ‘응분’이 필요 없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필요’란 측면에서 이들을 도와야 한다. 물론 너무 필요를 충족시켜 주면, 사회의 효율이 떨어지고 사회 체제가 무너진다. 결국 오늘날의 정의는 ‘조화’의 문제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