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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김정훈]붉은털원숭이와 계모

입력 | 2014-04-10 03:00:00


김정훈 사회부장

경북 칠곡군에서 벌어진 계모의 의붓딸 학대 사망사건으로 온 나라가 다시 분노의 회오리에 휩싸여 있다. 지난해 말 울산 서현이 사건으로 분통을 터뜨리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다짐했던 게 바로 엊그제 일 같다. 그런데 또다시 칠곡 사건을 접하면서 한편으로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 사건을 취재하고 보도하는 입장에서 너무나 가슴이 아플 뿐이다. 울산 사건보다 두 달 앞서 벌어졌던 칠곡 사건은 숨진 A 양의 언니에게 학대사망의 책임을 뒤집어씌운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더욱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년 가까이 계모는 물론이고 친아버지에게까지 학대를 당하는 동안 여덟 살 A 양에게 집은 생지옥 같았을 것이다. 울산 서현이 역시 2년 넘게 학대를 당하다 죽음에 이르렀다. 1년, 2년씩 학대가 이어지는 동안 이웃이나 학교는 한발 한발 죽음으로 향해가던 아이들을 살려내지 못했다. 경찰에 신고가 들어갔지만 남의 가정 일이라는 이유로 외면당했다. 아이들을 구할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우리 어른들은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그나마 ‘서현이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됐고, 올해 9월 말 시행을 앞두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무 말 못한 채 학대받으며 고통을 겪는 아이들이 있는데도 법을 만들어놓고 8개월이 지나서야 시행에 들어간다는 것부터 코미디지만, 이 법을 시행하기 위한 예산이 올해 한 푼도 배정돼 있지 않다는 언론 보도에는 아연실색할 뿐이다.

울산 사건 직후인 지난해 11월 정홍원 국무총리가 “아동학대는 어떤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라고 강조하고, 국회의원들도 서로 앞장서서 서둘러 법을 만들었던 것은 결국 분노에 찬 여론에 떠밀려 호들갑을 떨었던 것뿐이었나 싶다. 언제까지 더 많은 아이들이 학대당하고 목숨을 잃어야 우리 어른들은 정신을 차릴지 모르겠다.

이혼이 늘면서 친부모가 아닌 계부나 계모와 살게 되는 아이들은 자연히 늘고 있지만, 여기에 대응하는 우리 사회의 안전망은 여전히 허술하다. 물론 모든 계부와 계모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계모’ 소리 듣지 않으려고 친부모 못지않게 더더욱 의붓자식에게 잘하는 사람도 많다. 또한 계모의 의붓자식 학대가 문제의 본류도 아니다. 아동학대 사례는 해마다 늘고 있고 2012년에 통계에 잡힌 것만 6403건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친부모에 의한 학대 사례들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아이들에게 부모 노릇 제대로 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1957년 미국의 심리학자 해리 할로가 붉은털원숭이를 활용해 했던 ‘엄마 실험’의 결과는 ‘따스한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갓 태어난 붉은털원숭이 새끼들을 어미에게서 떼어내 인공으로 만든 가짜 어미와 살게 한 실험이다. 한 마리는 가슴에 젖병이 달린 ‘철사 어미’였고, 한 마리는 솜과 천으로 만든 ‘담요 어미’였는데 새끼 원숭이들은 배가 고파 우유를 찾을 때 빼놓고는 포근한 ‘담요 어미’의 품을 떠나지 않았다.

동아일보가 창간 94주년을 맞아 보도하고 있는 ‘행복충전 코리아’ 연재기획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초등학생 194명에게 심층설문조사를 했더니 아이들은 부모가 행복한 모습을 보일 때 행복도가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행복을 느낄 때를 구체적으로 써보라 했더니 “아빠가 저녁마다 엄마 다리를 주물러준다” “매일 아빠 엄마 표정이 밝다”는 답이 돌아왔다. 늘 웃음이 넘치는 화목한 가정이야말로 아이들에게 행복 그 자체인 것이다.

김정훈 사회부장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