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서(書)/페르난두 페소아 지음·배수아 옮김/808쪽·2만8000원·봄날의책
페소아가 세상을 떠난 뒤 친구들은 방에서 커다란 궤짝을 발견했다. 시, 산문, 희곡, 평론, 정치론 같은 광범위한 분야의 텍스트와 단상이 공책과 낱장 종이, 편지지, 전단 뒷면에 적혀 있었다. 페소아의 유고는 2만7543장이나 됐다.
이 가운데 페소아가 자필로 ‘Livro do Desasso-ssego(불안의 서)’라고 써서 묶어놓은 한 덩이의 원고를 연구자들이 정리했다. 1인칭 화자가 이끌어 가는 일상은 적요하다. 작가는 이 책에서 자신에게 베르나르두 소아레스라는 다른 이름, 즉 이명(異名)을 지어준다. 작가와 완전하게 일치하는 동일 인물은 아니지만 개성과 정체성을 상당 부분 반영했다. 그래서 이 책은 ‘저자 아닌 저자의 작품이자 책 아닌 책, 일기 아닌 일기’(‘옮긴이의 글’ 중)다. 일기이자 메모이며, 회고이고 사색이다.
작가는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는 ‘나’를 끝없이 파헤치면서 내면의 저 바닥까지 살피고 탐구한다. 외면의 일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들여다봄으로써 생겨나는 불안이 깃든 문장은 고독하지만 아득하도록 아름답다.
국내에 2012년 ‘불안의 책’(까치)이라는 제목으로 이탈리아어판과 영어판을 참고해 248쪽 분량으로 발췌해 번역한 책이 나왔다. 이번 완역본은 페소아가 20년에 걸쳐 쓴 산문 480여 편을 소설가 배수아가 독일어판과 영어판을 참고해 완역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