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시장과 자본력… 역대 최다 수상자 배출
반 시게루는 1994년 르완다 인종 대학살 때 종이 난민 수용소를 지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20년간 세계 곳곳의 재난 지역을 돌면서 단단하게 압착한 뒤 방수 방염 처리한 종이로 대피소를 지었다. 종이를 활용한 이유는 싸고 쉽게 구할 수 있고 재활용할 수 있는 친환경 재료이기 때문이다.
프리츠커상을 주관하는 미국 하이엇재단은 24일 그를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반 시게루는 20년간 전 세계의 재해 현장을 돌며 단순하면서도 위엄 있는 저비용의 피난처와 공공건물을 지어 피해자들을 도왔다”고 소개했다.
반 시게루가 2013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지은 종이 교회. 스티븐 구드너프 촬영·하이엇재단 제공
일본은 건축 강국이다. 일본인을 제외하면 이 상을 받은 아시아인은 2012년 수상자인 중국의 왕수가 유일하다. 세계무대에서 통하는 건축이란 서양 건축이기 때문에 근대화에 앞섰던 일본이 건축에서도 앞서갈 수 있었다. 일본이 경제 대국인 점도 자본이 있어야 구현되는 건축의 속성상 건축 강국이 되는 힘이 됐다.
건축가 서승모 사무소효자동 소장은 “유럽의 건축 시장은 활기를 잃어가고, 미국은 대단위 건축이 이뤄져 건축가보다는 건축 집단이 주목을 받는 데 비해 일본은 작은 집부터 큰 건물까지 다양한 시장이 공존해 기성 건축가는 물론이고 젊은 건축가들에게도 기회가 많다”고 설명했다.
동일본 대지진에도 살아남은 센다이 미디어테크를 설계한 이토 도요오에 이어 난민을 위한 건축가가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것은 서구 건축계가 건축의 본질적인 문제를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은주 소프트아키텍처랩 소장은 “경기가 호황일 때는 스펙터클한 건축이 주목받았지만 금융위기와 테러의 위협을 받는 지금은 건축이 인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일본에는 자기만의 건축 작업을 꾸준히 하는 깊이 있는 작가들이 많아 앞으로도 수상자는 계속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