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루탄 머리 맞고 9개월 혼수상태… ‘터키 민주화시위 상징’으로 떠올라
“파시스트 정부, 살인자 에르도안(터키 총리)!”
11일 오후 터키 이스탄불 시민들이 붉은 천으로 감싼 관 하나를 어깨에 짊어지고 거리로 나섰다. 차가운 비를 맞으며 15세 소년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는 시민들의 슬픔은 분노로 변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에게로 향했다. 거리로 나서지 못한 시민들은 집 창문에 서서 숟가락으로 프라이팬과 냄비를 두드렸다. 터키 반정부 시위에서 유행하는 시위 형태다.
터키의 반정부 시위가 한 소년의 죽음으로 더욱 격화되고 있다. 주인공은 지난해 6월 빵을 사러 집을 나섰다 시위 진압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은 베르킨 엘반. 그는 269일 동안 혼수상태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이날 오전 7시 숨을 거뒀다. 담당 의사는 “최근 몇 주 동안 상태가 악화돼 몸무게가 16kg까지 줄었다”고 말했다. 엘반의 어머니는 기자들과 만나 “아들의 생명을 앗아간 사람은 에르도안 총리”라며 “그는 심지어 시위대 진압에 나선 경찰들을 영웅이라고 칭송했다”고 분노를 터뜨렸다. 검시를 마친 엘반의 시신은 이슬람 종파 중 하나인 알레비파의 사원 ‘제메비’로 옮겨졌다. 장례식은 12일 열린다.
반정부 시위 격화로 2003년 집권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에르도안 총리는 더욱 곤란한 상황에 놓였다. 앞서 에르도안 총리는 10억 달러(약 1조680억 원)에 이르는 재산을 은폐하는 방안을 아들과 논의하는 녹음 파일이 폭로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터키의 주요 노조인 혁명적노동조합총연맹(DISK)도 엘반의 장례식에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혀 터키 정부는 12일 엘반의 장례식이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이어질 가능성에 긴장하고 있다. CNN은 “30일 지방선거는 단순히 시장을 뽑는 행위가 아니라 에르도안 총리에 대한 심판 투표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