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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윤진숙만 괜찮은 ‘윤진숙 사태’

입력 | 2014-02-10 03:00:00

여론과 여야 반대 무릅쓰고 ‘모래밭 속 진주’라며 장관 임명
대통령의 사람 보는 눈 못 믿겠다
책임총리 아니고 ‘리모컨 총리’… 대통령에 꼼짝 못하는 여당본색
“여성리더는 역시 안 돼” 큭큭… 경국지색 아닌 傾國之淑두렵다




김순덕 논설실장

“저는 괜찮습니다.”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해임된 뒤 심경을 묻는 동아일보 기자의 질문에 대답한 말이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운다는 만화영화 주인공 ‘캔디’, 아니면 저격을 당하고도 “나는 괜찮아” 했다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그렇다고 성추문으로 해임됐던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처럼 국민과 대통령 걱정을 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그와 직접 통화한 기자한테 “전혀 침울하지 않은 씩씩한 목소리였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안 괜찮은 상태를 넘어 나라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윤진숙 본인은 괜찮아서 좋겠지만 2013년 2월 17일 그가 내정된 순간부터 이달 6일 해임되기까지 ‘윤진숙 사태’의 유탄을 맞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1차 피해자는 대통령이고 2차 피해자는 국민’이라고 한다면, 윤진숙의 ‘1차 피해자는 GS칼텍스, 2차 피해자는 어민’ 발언 식의 설화(舌禍)를 일으킬지 모르겠다. 야당은 물론 여당의 희귀한 반대까지 무릅쓰고 윤진숙 장관 임명을 강행한 대통령은 이번 사태의 원인 제공자이자 큰 피해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첩인사와 불통 스타일이야 이미 알려진 바지만 이젠 대통령의 사람 보는 눈을 국민이 못 믿게 됐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윤진숙을 ‘모래밭에서 찾은 진주’라고 했다. 인사 청문회에서 “몰라요”와 실없는 웃음을 남발하는 장면을 TV로 다 봤다면서도 대통령은 “쌓은 실력이 있으니 지켜보고 도와 달라”고까지 했다.

윤진숙은 장관답지 않은 언행만 심각한 게 아니었다. 세미나 발표 실력은 좋았을지 몰라도 장관으로서의 실력은 그야말로 “몰라요”였다. 대통령의 극찬을 받았던 2013년 업무보고 중 해양경제특구 지정은 기획재정부 등의 반대로 입법 발의도 하기 전에 난관에 빠졌고, 북극항로 시범 운항도 실체 없는 쇼에 그친 상태다. 그가 만들겠다는 ‘우뚝 선 해양수산부’는 웃기는 해양수산부가 돼버렸다.

대통령 눈엔 진주인 윤진숙이 이런 정도면 다른 장관은 기대를 접는 게 국민행복에 좋을 성싶다. 작년 4월 16일 모처럼 대통령을 만난 국회 상임위원회 간사들이 내정 철회를 간곡히 간(諫)한 바로 다음 날 임명장이 수여되자 당시 민주당 박기춘 원내대표가 “민심을 거스른 임명 강행은 정권 운영의 손톱 밑 가시가 돼 임기 내내 화근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그대로 될 판이다.

장관 해임 건의를 했다는 정홍원 총리도 모양새가 우스워졌다. 6일 오전까지만 해도 “의전총리라는 말이 있는데 해임 건의를 행사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원 질문에 “말 실수로 해임 건의까지 할 일인지 의문”이라던 총리는 오후 들어 “해임 건의를 깊이 고민 중”이라고 태도를 바꿨다. 점심 때 김기춘 비서실장 등 청와대와 협의를 한 결과라는데, 하려면 좀 일찍 할 것이지 이젠 ‘리모컨 총리’라는 별명을 덧붙이게 됐다.

그런데도 김태흠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대통령 공약(公約)인 책임총리를 실천한 사례”라고 사족을 붙였다. 괜히 책임총리가 대통령 공약(空約)이라는 사실과 새누리당의 ‘아부 본색’만 상기시킨 형국이다.

윤진숙이 임명된 날 동아일보는 ‘대통령이 옳았음을 보여주길’ 사설에서 “윤 장관이 장관 역할을 잘못 수행할 경우 전체 여성은 물론이고 첫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평가까지 동반 추락할까 걱정스럽다”라고 썼다. 같은 여자로서 나는 윤진숙 사태의 파장이 전체 여성에게 미칠까 봐 진심으로 걱정스럽다.

개콘(개그콘서트)보다 웃긴다는 윤진숙 동영상이 보여주듯, 잘 모르거나 실수했을 때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여자들이 적지 않다. 그가 정무 감각이 없다고 자인했듯, 남자들 같으면 군대에서 ‘쪼인트’ 까이며 배우는 정무 감각도 여자들은 배울 기회가 없다.

애매한 중립의 상황을 못 참고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엉뚱한 말을 하거나, 생각을 있는 대로 드러내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는 경향도 여성에게는 있다. 사회생활에서 살아남으려면 윤진숙처럼 하면 안 된다는 걸 일깨워준 점이 이번 사태가 여성들에게 남긴 교훈일 터다.

현명한 참모가 있어 간(諫)하면 좋겠지만, 어쩌면 해봐도 안 먹히겠지만,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기해서라도 리더십의 혁신을 보여주기 바란다. 그래야 윤진숙(尹珍淑)의 실패가 경국지색(傾國之色) 아닌 경국지숙(傾國之淑)이 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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