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집/김하기 지음/264쪽·1만3000원·해성
1996년 중국 옌볜 여행에서 취중에 두만강을 통해 입북해 물의를 빚었던 작가는 그 경험을 ‘우물가의 여인’에 담았다. 만취 상태였던 도강 전 기억의 공백을 채우고 싶었던 ‘나’는 어느 날 그날의 술자리에 있었다는 옌볜 조선족 여성작가 소만옥을 만나게 된다. 그의 말에 따라 ‘나’는 잃어버린 퍼즐을 맞춰간다.
당시 도강이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돼 ‘분단시대를 뛰어넘은 작가’, ‘어느 종북주의자의 말로’라는 반응을 불러왔지만, 송환돼 돌아오자 집에서는 그를 주정뱅이로 진단하고 알코올의존증을 치료하는 기관에 집어넣었다. ‘체류기간은 보름에 불과했지만 내가 상상하던 곳이 아닌 데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작가의 눈에는 폐쇄적인 은둔의 왕국으로 비쳤다. 도강 이전에는 이념적인 글들을 쓰기도 했지만 도강 이후 이데올로기가 피곤하게 느껴지면서 역사소설을 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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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영어 실력을 지적당하는 나이든 영어 교사(‘스승’), 대입 면접날 아들이 가출했다는 전화를 받은 이혼남(‘조용동시’), 상수원 보호구역에 호텔을 짓게 허가해 주라는 외압에 갈등하는 구청 공무원(‘계단에 앉아서’), 수몰을 앞둔 마을에서 실성해버린 뒤 사라진 소녀(‘달집’)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헤매는 우리 자신이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