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대로 안 된다고 화내면 결과는 뻔해”
최희암 전 연세대 농구부 감독은 선수시절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1990년대 연세대 농구부를 국내 정상에 올려놓아 스타 농구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열심히 하다 보니 경험이 쌓였고 성과도 생겼다. 성과를 내다 보니 확신이 생겼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하게 됐다. 주어진 환경에서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DB
―슛은 정확한 게 우선인가, 아니면 많이 던지는 게 필요한가.
“슛은 일단 잘 들어가야 한다. 잘 들어가야 더 많이 쏘게 된다. 슛 성공률이 75%인 선수와 90% 이상인 선수는 일단 신체적인 차이가 가장 크다. 그 다음에는 자신감이다. 자신감이 있으면 공이 잘 들어간다. 같은 능력이라면 자신감에 따라 성공률이 75%가 될 수도 있고 90%가 되기도 한다. 이상민, 우지원, 서장훈 등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을 갖춘 선수들은 컨디션, 자신감, 주변 환경 등에 따라 경기력에 영향을 받는다. 이상민 선수는 고교 시절 득점력이 매우 좋았다. 그런데 대학에서는 득점력이 많이 떨어졌다. 문경은, 우지원, 서장훈 등의 슛이 더 좋기 때문에 자신이 슛을 쏠 기회를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자꾸 그런 상황에 익숙해지다 보니 슛을 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 잘하는 선수도 못하게 된다. 이런 것들이 결국 자신감과 관련이 있다.”
“스타 출신 감독들은 자신들이 과거 경기에서 잘했기 때문에 선수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잘 모른다. 자신들은 공을 쉽게 넣었기 때문에 공을 못 넣는 것에 대한 분석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 ‘저것도 못 넣느냐’고 꾸짖기도 한다. 일도 마찬가지다. 잘하는 사람의 눈에는 당연히 쉬운 업무인데 다른 사람은 몇 시간을 해도 어려울 수 있다. 스타 출신 감독은 선수들이 계속 못하면 짜증을 내고 결국에는 해당 선수를 ‘안 되는 선수’라고 판단해 관심을 끊어버린다. 기본적으로 에이스들은 자기중심적 사고를 갖기 쉽다. 스타 선수는 학교에 다닐 때 수업시간에 졸아도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는다. 고교에서 대학에 진학할 때는 대학 감독과 코치들이 나서서 경쟁적으로 스카우트를 하려고 한다. 이게 해당 선수의 잘못은 아닌데 잘하는 선수들은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감독은 선수들에게 봉사하는 자리다. 하지만 스타 출신 감독은 ‘내가 옛날에 누구였는데, 농구선수 누군데’라는 생각을 여전히 하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주변에서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게 된다.”
―감독과 선수의 차이는 무엇인가.
―선수들에게 질책할 때 어떻게 해야 하나.
―경기장에서 감독의 전략대로 따라주지 않는 선수들도 있다.
“선수는 감독이 지시하는 대로 따라줘야 한다. 최대한 그렇게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경기에서는 상대팀도 바보가 아니니까 꼭 감독이 지시하는 대로 경기가 진행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선수의 돌출행동에 대해서는 꾸짖어야 하지만 경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경기가 감독의 전략대로 풀리지 않을 때 감독에게 필요한 덕목이 인내력이다. 감독의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해서 감정이 폭발하고 성질을 부리면 무조건 경기에서 진다. 감독이 인내심을 가지고 경기를 운영해도 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면 선수들이 경기를 할 때 적어도 실수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는 않는다. 선수가 실수를 한다고 감독이 화를 내면 선수들은 실수를 막는 데 주력한다. 슛을 던져야 할 때 실수를 우려해서 던지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100% 진다. 감독이 화를 내면 듣는 선수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도 많다.”
―프로농구에서 하위권 팀을 맡았다.
“올라갈 일만 남았으니까 오히려 심리적인 부담감은 적었다. 그런데 지던 사람은 지는 게 습관이 될 수 있다. 패배의 생활화가 되면 어려워진다. 코치진의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심리적으로 패배가 익숙해진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 승리하기는 어렵다. 꼴찌에서 벗어나려면 팀의 분위기부터 빨리 바꿔야 한다. 선수 교체가 좋은 대안이다. 모비스 팀을 맡고 선수 14명 중 10명을 바꿨다. 전자랜드에서도 선수들을 대폭 교체했다. 꼴찌 팀의 선수를 다른 팀의 선수들과 맞바꾸면 우수한 선수들이 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실력이 같다고 가정할 때 성적이 좋은 팀, 이겨본 팀의 선수들이 성적이 좋지 못한 팀의 선수들보다 심리적으로 훨씬 낫다. 성적이 좋은 팀의 선수들은 승리가 몸에 익숙해져 있다. 게다가 승리하는 팀에 소속됐지만 경기장에서 많이 못 뛴 선수들은 마음속에 독기를 품고 있다. 꼴찌 팀이 이런 선수들을 영입하면 팀의 분위기가 바뀌고 성적이 올라간다. 때로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 우리 팀 주전들을 내놓고 좋은 성적을 내는 팀의 벤치선수를 받을 때도 있다.”
연세대 체육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연방체육대학원(United States Sports Academy)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6∼2002년 연세대 농구부 감독, 코치를 지냈다. 프로농구에서는 울산모비스와 인천전자랜드의 사령탑을 맡았고 2009년 10월부터 고려용접봉 중국법인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