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시장 ‘고난의 한주’ 예고
○ 세계경제 덮친 ‘3D’ 악재
글로벌 경제가 이처럼 불안한 양상을 보이는 것은 악재가 워낙 지역을 가리지 않고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세계경제가 큰 위기를 겪을 때마다 획기적인 신성장산업이나 막대한 경기부양을 주도하는 나라가 나타나면서 흐름을 반전시켰지만 지금은 그런 ‘구세주’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경제의 구도는 중국의 경기 둔화 또는 하강(Downturn)과 유럽의 디플레이션(Deflation) 위기가 신흥국의 통화가치 하락(Devaluation)과 맞물리며 거대한 폭풍을 만들어내는 모습이다.
재정위기에서 한숨 돌린 유럽은 저물가 위기와 싸우고 있다. 1월 유로존의 물가상승률은 0.7%로 4개월 연속 0%대를 이어갔다. 성장률은 낮고 물가상승률이 하락한다는 것은 경제 전반의 활력이 크게 떨어져 있다는 의미로, 소비와 고용 개선을 통해 경기 회복을 도모해야 하는 유럽 국가들에는 매우 부정적인 요소다. 특히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국면이 현실화되면 이들 국가의 빚 상환 부담이 커지는 만큼 재앙에 가까운 결과가 나타날 우려도 크다.
아르헨티나에서 시작된 신흥국의 ‘통화가치 급락 도미노’도 인접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경제의 기초체력과 무관하게 ‘신흥국 딱지’를 갖고 있는 곳이라면 무차별적으로 퍼지는 분위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요즘은 헝가리, 폴란드 통화까지 약세를 보이는 등 신흥국 쇼크가 경제 여건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지역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 신흥시장 자금 계속 썰물
신흥시장의 자금은 계속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해외 펀드조사기관의 집계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 29일까지 신흥국 주식 펀드에서 모두 122억 달러(약 13조 원)가 빠져나갔다. 이를 주(週) 단위로 쪼개 보면 자금 이탈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1월 마지막 주 유출액이 63억 달러로 첫째 주의 5배나 됐다.
연초부터 대외 악재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한국 정부도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겉으로는 “한국 경제가 탄탄한 만큼 큰 충격이 없다”는 논평을 내고 있지만 이는 시장 안정을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부로서는 무엇보다 실물경제 회복이 다시 더뎌질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걱정이다. 신흥국 쇼크가 한두 나라로 끝날 일이라면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불안심리가 확산된다면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엄청날 수 있다. 지난해 한국의 전체 수출액에서 중국 러시아 인도 등 10개 신흥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40%를 넘었다.
유재동 jarrett@donga.com·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