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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전문기자의 음식강산]새큼달큰 새조개, 졸깃졸깃 갱개미

입력 | 2014-01-29 03:00:00


‘갓 부화된 새’ 모양의 새조개(위)와 꼬들꼬들 졸깃한 갱개미 무침. 동아일보DB

내포 땅은 푸근하다. 아늑하다. 낮은 땅과 둥글고 야트막한 산. 사람들도 서산마애여래삼존부처님(국보 제84호) 얼굴 닮았다. 보리밥알갱이처럼 둥근 볼에 서글서글한 웃음. 보기만 해도 넉넉하다. 가운데 석가부처는 당당한 체격의 장자풍이다. 두툼한 입술에 눈을 크게 뜨고 방글방글 웃는다. 오른쪽 미륵부처 얼굴은 개구쟁이 소년처럼 장난기가 가득하다. 왼쪽 제화갈라보살 웃음은 봄바람처럼 따뜻하고 부드럽다. 세 분 모두 얼굴이 통통하다.

내포(內浦)는 ‘내륙 깊숙이 들어앉은 포구’를 말한다. 태안, 서산, 당진, 홍성, 예산, 아산, 보령, 청양 등 가야산(678m) 둘레 열 고을이 바로 그곳이다. 임진왜란(1592), 병자호란(1636) 두 난리도 피해간 ‘복 받은 땅’이다. 옛날 아산만, 가로림만, 천수만에 연결된 실핏줄 같은 하천을 통해 내륙 깊숙이까지 뱃길이 닿았다. 곳곳에 쪼글쪼글 ‘어머니 빈 젖’ 같은 갯벌이 질펀하게 누워있다. 짭조름한 새우젓국냄새가 고릿하다.

요즘 내포해안의 새조개가 으뜸이다.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마침 홍성 남당항 새조개축제(1월 17일∼3월 31일)가 한창이다. 남당항에는 횟집만 100여 개가 흥성댄다. 단연 새조개샤부샤부가 최고 인기다. 육수에 야채를 넣어 팔팔 끓인 뒤, 그 끓는 물에 새조개를 10여 초 살짝 데쳐서 먹는 게 샤부샤부다. 부들부들 새콤하고 달큰하다. 너무 익히면 조갯살이 질기다. 새조개는 조갯살이 ‘갓 부화된 털 없는 새’ 모양이라서 붙은 이름. 언뜻 ‘새부리 모양’ 같기도 하다.

새조개는 양식이 안 된다. 남당항 어느 횟집이나 똑같은 새조개란 얘기다. 결국 육수가 맛을 가른다. 저마다 육수비결이 따로 있다. 그 포인트는 ‘누가 더 새조개의 깔끔하고 담백한 맛을 잘 살려내느냐’에 있다. 육수의 약방감초 같은 멸치도 여기선 절대금물이다. 조갯살 맛이 죽는다. 멸치의 비린내와 강한 맛 때문이다. 상큼하고 풋풋한 향의 미나리도 마찬가지. 그래서 아예 육수를 맹물로 하는 집까지 있다.

‘남당의 터줏대감’ 남해수산횟집(041-631-9555) 박영심 사장(61)이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맞는다. 미륵보살님이신가, 관음보살이신가. 널따란 가게 안이 왁자하다. 역시 이 집 육수 맛은 담백하고, 혀끝에 걸리는 여운이 진하다.

“무, 다시마, 양파, 대파를 통째로 한 시간쯤 끓이다가 먼저 다시마를 건져낸다. 그 뒤 한 시간쯤 더 끓이면 거무스름한 육수가 나오는데, 그 육수에 배추, 시금치, 대파, 팽이버섯을 넣어 자글자글 끓인다. 여기에 조갯살을 데쳐 먹으면 된다. 새조개무침은 팔팔 끓는 육수에 조갯살을 1분 정도 담갔다가 꺼내면 아삭아삭 부드러워지는데, 그것을 배, 오이, 양파, 대파를 잘게 썰어 무치면 된다. 이때 매실청을 넣어 잡내를 없앤다.”

새조개샤부샤부엔 보통 갱개미무침이 서비스로 곁들여 나온다. 우와! 맛이 황홀하다. 꼬들꼬들 새콤달콤 온몸의 숨구멍이 짜릿짜릿하다. 오도독! 오들오들 씹을 때마다 잇몸이 간질간질 자지러진다. 맨발로 비닐공기방울 즈려밟아 터뜨리듯 강그럽다. 갱개미는 간재미(가오리)를 내포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다. 옛날엔 갱개미를 막걸리에 조물조물 빨아 물기를 짜낸 뒤, 미나리에 무쳐먹었다. 요즘은 사이다에 담갔다가 꺼낸 뒤 무친다. 그게 고들고들 맛있다. 토막 친 간재미 살, 길쭉하게 찢어낸 간재미무침, 헤싱헤싱하면서도 졸깃졸깃 구뜰하다. 문득 코쭝배기에 외양간 여물 익는 냄새가 물큰하다.

음식은 북쪽으로 갈수록 슴슴하고,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짭조름하다. 내포 입맛은 밍밍한 듯 간간하다. 예산 수덕사나 서산 개심사 절 마당처럼 소박하고 정갈하다. 개심사는 조붓한 오솔길 끝에 살포시 숨어있다. 심검당(尋劍堂)의 ‘구불퉁 기둥’이 마치 늙은 어머니의 구부정한 등 같다. 참 ‘곱게 늙은 절집’이다. 산 너머엔 해미읍성이 보인다. 간월암(看月庵)도 지척이다. 근처엔 어리굴젓이 지천이다. 달고 찰지다.

태안 천리포수목원에 붉은 애기동백꽃이 우우우 활짝 피었다. 노란 매화(蠟梅·납매) 향기가 진하게 코끝을 간질인다. 복수초 노란 꽃망울이 탱탱 불어터졌다. 풍년화도 주황색 꽃잎을 살짝 열었다. 봄이 슬금슬금 오고 있다. 입안에 사르르 침이 괸다.

김화성 스포츠레저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