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입원 피해자 4명 정신보건법 憲訴
정신보건법 폐지 공동대책위원회가 14일 서울 종로구 북촌로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책위는 이날 정신보건법 24조가 신체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병원이 말한 보호의무자는 A 씨의 딸이다. A 씨를 입원시킨 것도 딸이었다. A 씨는 지난해 딸의 애인이 “3000만 원을 빌려 주면 투자해 크게 불려 주겠다”고 하자 그에게 돈을 건넸다. 하지만 수익은커녕 원금 중 2000만 원은 돌려받지도 못했다. A 씨는 “그 남자를 혼인빙자 간음과 사기로 고소하겠다”고 딸에게 말했다. 그 직후 A 씨는 병원에 끌려왔다. A 씨는 딸의 애인이 딸을 부추겨 자신을 강제로 입원시켰다고 생각한다. 우여곡절 끝에 변호사와 연결돼 퇴원 절차를 의뢰했지만 14일에도 수도권의 한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상태다.
이처럼 경증의 정신 질환자나 정신 질환 자체가 없는 사람이 가족과 갈등을 겪던 중 자신의 의사에 반해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당하는 것은 정신보건법 24조 때문이다. 이 조항은 보호의무자 2인과 정신과 전문의 1인의 동의만 있으면 정신질환자를 강제로 입원시킬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간은 6개월 이내로 한정하고 있지만 심사를 거쳐 얼마든지 연장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입원 여부에 대한 정신 질환자 본인의 뜻이 반영될 기회는 아예 없다.
배금자 변호사(해인법률사무소)는 “바람을 피우던 남편이 이혼할 구실을 만들기 위해 어머니와 짜고 아내를 정신병원에 반복적으로 강제 입원시키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헌법소원에 동참한 대학 4학년 김모 씨(29)는 부모님과의 갈등으로 강제 입원당한 경우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오랫동안 평범한 일상생활을 하던 김 씨는 지난해 9월 17일 경기 성남시 분당동에서 산책하다 끌려가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됐다. 의사인 아버지는 김 씨에게 “네가 끌려갈 만큼 미치지는 않았지만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하려고 하니까 넣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씨는 정신장애인의 권익을 위한 활동을 하는 것과 관련해 아버지와 마찰을 빚고 있었다.
2012년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된 사람의 비율은 전체의 75.9%에 이른다. 일본(30% 내외), 유럽(3∼30%가량)에 비해 훨씬 높다. 일부 정신병원이 수익을 내기 위해 장기간 병상을 채울 수 있는 강제 입원을 남용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중국의 불법 사설 감옥인 ‘흑(黑)감옥’에 비견할 만하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정신장애인을 치료할 때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사회 내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소원을 대리한 권오용 변호사(예인법률사무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정신보건 분야 수석 컨설턴트 수전 오코너가 2012년 한국을 방문 조사한 뒤 한국의 정신보건정책을 ‘관계 당국과 의료기관과 가족의 카르텔’이라고 표현했다”며 “‘정신 질환자를 일단 가둬 놓고 보자’는 문화를 꼬집은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