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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애지중지했던 ‘아미타삼존도’ 이송과정 동행記

입력 | 2013-10-22 03:00:00

문화재 전문팀이 겹겹이 포장… 최저몸값 10억원 보험 들어




18일 오전 일본 야마나시 현 고후 시의 S사찰에서 정우택 동국대 교수(오른쪽)와 이소가이 다이데쓰 주지가 금선묘 아미타삼존도를 포장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공민왕 8년(1359년)에 제작됐다는 화기가 지난해 발견된 이 고려 불화는 1530년 이전 일본으로 건너갔으므로 근 500년 만에 귀환하는 셈이다. 고후=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부처는 어디에 있어도 부처입니다. 본존(법당의 중심 부처. 여기서는 아미타삼존도를 지칭)께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따사로이 이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17일 오후 3시 반경 일본 야마나시 현 고후 시의 S사찰. 정원에서 그토록 재잘거리던 까치들은 어느새 사라졌다. 주지 스님의 법문 암송이 끝나고 갑작스러운 적막이 법당을 휘감는 순간, 윙 하고 가림막이 올라갔다. 사진으로만 보던 ‘금선묘 아미타삼존도’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왠지 털끝이 쭈뼛 섰다.

18일 출발을 앞두고 이날 열린 법회는 사상 첫 ‘환송회’였다. 사찰 기록에 따르면 1530년 전후 고려 불화가 모셔진 뒤로 한 번도 절을 떠난 적이 없다. 그런 불화가 내일이면 한국으로 떠난다니 법당에는 수백 명이 몰려들었다. 한 할머니는 “수십 년 드나들었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본존을 뵈는 건 처음”이라며 들떠했다.

현지인도 이 삼존도를 보기 힘들었던 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와의 인연 때문이다. 1582년 이 불화가 영험하다는 소문을 듣고 절을 찾은 도쿠가와는 대단한 법력을 느끼고 자신의 무운을 기원했다. 에도 막부를 세운 뒤에는 이 불화를 1년에 딱 이틀만 공개하도록 명했다. 사찰은 그 유지를 받들어 지금까지도 외부 공개를 극히 꺼려 왔다.

그런 불화가 해외로 간다니 법당 분위기는 밝지만은 않았다. 한 사찰 관계자는 “한국행을 반대하는 방문이나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특히 올해 초 쓰시마 섬에서 도둑맞은 불상이 아직 반환되지 않은 게 걸림돌이 됐다.

하지만 이소가이 다이데쓰 주지는 “신뢰하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고 연신 되뇌었다. “인연의 지엄함을 믿습니다. 정우택 교수(동국대)가 본존의 정확한 기원을 밝힌 것도 다 이유가 있을 겁니다. 전시도 (내가) 먼저 ‘가져가라’고 했어요. 한국과 일본은 오랜 역사를 나눈 사이입니다. 잠깐 사이가 나빠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예요.”

지난해 4월 600년 넘는 이 불화의 하단에서 희미하게 남아있던 화기(畵記)를 찾아낸 정우택 교수는 법회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 교수는 “부처님 인도 아래 아버지가 준 마지막 선물”이라고 회상했다. 화기를 발견했을 때 정 교수는 부친이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았다. 자료를 챙겨 서울에 돌아온 뒤 닷새 만에 부친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뜻깊은 불화이니 이송 과정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이송 비용만 2500만 원이 넘었다. 일본통운의 문화재 전문 수송팀을 불러 겹겹으로 포장했다. 18일 오전 현장에서 지켜본 과정은 정성 그 자체였다.

중성지로 일일이 불화를 감싼 뒤 전용 자개함에 넣고, 이를 비단으로 싸서 특별 제작된 목곽에 넣었다. 또 이를 다시 포장하고 밀봉한 뒤 마지막으로 나무박스에 넣는 데 1시간 이상 걸렸다. 운송에는 온도와 습기 조절 기능을 갖춘 특급 무진동 차량이 배치됐다. 운송 과정에 문제가 생겼을 때 받는 보험금도 최저 10억 원이 넘는다.

금선묘 아미타삼존도는 23일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다.

24일 개막하는 동국대박물관 개관 50주년 특별전 ‘선선선(禪善線)-빛으로 나투신(모습을 드러내신) 부처’에서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특별전에서는 국내 개인 소장 조선 불화인 ‘1644년 치성광여래강림도’ ‘16세기 아미타대보살도’ ‘1581년 아미타삼존도’도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11월 22일까지. 무료. 일요일 휴무. 02-2260-3722

고후=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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