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배 반성-사죄한 오부치 화해-협력의 미래 화답한 DJ 양국 정상 공동선언 한지 15년… 문화-국민교류 큰 진전 됐는데정치 지도자들 무엇하고 있는지… 朴대통령도 아베총리도‘공동선언’ 정신으로 돌아가야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주필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 국회에서 남긴 명언이다. 그는 한국의 민주화에 대해 “한국민의 피와 땀으로 실현한 기적입니다”라고 덧붙였다. 회의장에서는 우레 같은 박수가 터졌다. 1998년 10월 8일의 일이었으니 곧 15주년이다.
김 대통령이 남긴 것은 연설만이 아니다. 같은 날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역사적인 대화를 한 뒤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라는 열매를 내놓았다. 다음은 공동선언의 한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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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부치 총리의 사죄는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의 ‘전후 50년 담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무라야마 담화가 한일 정상 간의 외교문서가 된 셈이다. 김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 ‘화해’를 표명한 것도 획기적이었다. 선언문에는 한국의 일본 대중문화 수용까지 담겼다.
이 선언의 주역이 김대중 대통령이라는 점에 의미가 컸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맺고 국교를 연 주역이 정반대 존재인 박정희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한일조약은 식민지 지배를 청산하면서도 국민 간의 ‘화해’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일본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이 부족했고 한국에서는 조약 반대 시위가 격렬했다. 이를 억누르고 조약을 맺은 것이 강권적인 군사독재를 하던 박정희 정권이었다.
여기에는 긴박한 냉전하에서 한일 협력이 필요하다는 전략적 판단이 있었다. 일본의 경제 협력을 지렛대로 한국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으니 잘못된 판단이 아니었지만 협약을 맺은 한쪽은 군사정권이고 다른 쪽은 반성이 부족한 정권이었다는 점에 한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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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다시 15년. 확실히 문화와 국민 교류는 크게 진전됐지만 정작 정치지도자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은 아직까지 회담도 못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쌍방에 있다. 아베 정권은 과거에 대한 반성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 “언제까지 사과해야 하나”라는 기분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에게서는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가 옛날에 박정희 정권을 그토록 지원했는데…’라는 냉전 시대의 감각이 엿보인다. 역사관도 당시 정권에 가깝다.
한국에서는 과거 조약을 뒤집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조약으로 체결한 협정에서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종료됐다”고 한 보상 청구를 개인에게 인정하는 판결이 법원에서 잇따르고 있다. 시대 변화에 따른 것이겠지만 일본에 “이제 와서”라는 당혹감을 안기고 있다. 아베 정권의 태도도 보다 경직되게 만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친일’이라고 비판받은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는 듯 대일 강경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야당과 국민을 의식해서 그렇다면 꼭 기억해 줬으면 하는 내용이 있다. 과거 한일 관계를 크게 전진시킨 것은 대통령의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그의 최대 라이벌도 역사적 역할을 다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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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