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는 기념일이나 국책사업 등에 '숫자 표현'을 선호한다.
국가 기념일에는 날짜를 앞세워 숫자 표현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6·25(한국전쟁), 7·27(정전협정체결일), 9·9절(정권수립 기념일), 10·10절(노동당 창건일) 등 기념일을 숫자로 표현한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8·3인민소비품', '376군부대', '1호 도로', '9호 제품', '95호 공장', '65호 상점' 등 군대나 국책사업에 쓰이는 명칭에도 숫자를 앞세우는 것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그 뜻을 헤아리기가 어려워서다.
최근 북한전문매체 뉴포커스에 따르면 북한이 정식명칭보다 숫자 표현을 널리 쓰는 이유는 그 의미를 불분명하게 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탈북자 이모 씨는 "북한은 숫자로 불리는 암호의 나라"라면서 "혜산시에는 '376군부대'가 있는데, 후방을 보는 군부대로 후열사업(물자보관 및 조달)을 하는 부대"라고 숨은 의미를 전했다.
또 다른 탈북자 한모 씨도 "북한에서는 '8·3인민소비품'이 있다"면서 "1984년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주민을 위해 가내작업반에 다양한 소비품을 만들도록 지시해 만들어진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북한에서는 '8·3'이 질이 낮거나 사이비라는 부정적 의미로 변질, 여기서 파생된 말이 '8·3 군인(가짜 군인)', '8·3 부부(불륜관계)' 등이다.
이처럼 숫자 표현이 빈번하다보니 북한 주민도 헷갈릴 지경이란다. 이 씨는 "주민들도 가끔 헷갈려하는 숫자를 굳이 고집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럼에도 숫자표현을 애용하는 이유로 그는 "북한은 폐쇄의 나라다. 당 대남공작 부서도 목적이나 사명을 숨기기 위해 숫자를 쓴다"면서 "북한은 숨길 것이 많으니 주민에게 알 권리를 주지 않으려고 암호를 쓰는 것"이라고 전했다.
백주희 동아닷컴 기자 ju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