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樂서 지상중계]
신경숙 ● 1963 전북 정읍 출생 ● 1982 영등포여고 졸업 ● 1984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 졸업 ● 1985 ‘문예중앙’ 소설 ‘겨울우화’로 등단 ● 대표작 ‘풍금이 있던 자리’ ‘깊은 슬픔’ ‘외딴방’ ‘엄마를 부탁해’ 등
안녕하세요. 이렇게 넓은 곳에서 하는 강연일 줄 몰랐네요(웃음). 음… 이렇게 만난 게 간단한 일은 아니에요. 아마 우리가 모르는 사이 엮이고 섞이고 스쳐서 만났을 거예요. 가장 중요한 것은 만나는 순간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 서로 최선의 시간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걱정이 되는군요. 사실은 시력이 작년부터 굉장히 나빠져 눈만 크게 뜨고 있을 뿐 잘 안 보인답니다. 잘 안 보이기 때문에 잘할 수 있을 거예요(웃음).
제가 태어난 곳은 남쪽의 전북 정읍이라는 곳인데 그곳에서도 더 들어가는 농촌에서 중학생 때까지 성장했어요. 어렸을 때 즐거움이 책을 읽는 것이었는데 생각해보면 책이 많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에 도서관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형제가 아주 많았습니다. 특히 제 위로 남자형제가 많았는데 그들이 어디에선가 책을 빌려왔어요. 그들이 책을 감나무 밑에 두고 놀고 있으면 저는 그 책이 뭔가 싶어 읽기 시작했어요. 기억이 나는 게 어머니가 제가 책을 읽고 있으면 기뻐하고 많은 걸 막아줬어요. 어머니가 기뻐하니 책을 더 읽게 됐는데, 남자형제가 많아 방에서만 책을 읽을 수 없어 나무에서 읽기도 했습니다. 그중 헛간에서 읽었을 때가 기억에 남는데, 그때 그곳에서 많이 성숙해졌습니다.
그렇기에 나도 글 쓰는 작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때가 중학생 때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연일 수도 있고 제 능력 바깥에 다른 힘이 작용해 발생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책에 나오는 인물의 편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지금 돌이켜보면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까’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젊은 친구들을 만나 “뭐가 되고 싶니” 하고 질문하면 구체적으로 대답을 못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고 보면 제가 중학생 때 작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축복이었다고 봅니다.
그러고 나서 1979년 서울로 오게 됐어요. 벌써 30년이 지난 일인데, 당시는 농촌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동하는 시기였지요.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일반적인 과정은 아니었습니다. 그때 낮에는 산업현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과정이 생겼거든요. 저는 아침에 회사에 나가 일하다 오후 5시가 되면 학교에 가서 공부를 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학교에 가고 싶어 한 사람이 800명이라면 790명은 일을 해야 했고 10명만이 갈 수 있었기에, 학교에 가서 책상에 앉는 그 모든 순간이 소중했습니다. 그래선지 지금도 오후 5시는 무언가를 새롭게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서글픈 생각이 드는 시간이기도 해요.
서울로 오면서 환경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넓은 마당이 있고 창문과 문 밖을 나가면 자연이 펼쳐졌지만, 그 이후로는 주변에 공장과 지하철이 있었습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환경의 변화가 있고 나서 더욱 커졌습니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고…. 제 마음속에서 작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자라나지 않았다면 현재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어요. 제가 대학생이 되기 전 저를 지켜줬던 것은 무엇보다 책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학교생활에 마냥 충실했던 건 아닙니다. 한국 사회에 노조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때라서 노사 갈등이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학교 가는 것이 무의미하고 싫어져 오랫동안 결석하게 됐어요. 그런데 선생님 한 분이 찾아와 “너는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으셨어요. 저는 “책을 읽고 싶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러자 선생님이 “학교에 와서 책을 읽도록 해라. 하지만 결석을 오랫동안 했으니 반성문을 써와라”고 하셨어요.
하늘에서 떨어진 별 같은 말
그전에 작가가 돼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소설을 쓰고 싶은지, 시를 쓰고 싶은지, 또 다른 장르의 글을 쓰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그러던 중 선생님 말씀을 듣고 ‘소설가가 돼야겠다’는 마음을 가졌지요. 저는 제가 정말 반성문을 잘 써서, 글 쓰는 재능이 넘쳐흘러서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후 소설가가 돼 선생님을 찾아가니 “너 정말 소설가가 됐니. 그때는 마음 둘 곳 없는 제자가 글 쓰는 걸 좋아하는 것 같고, 책 읽는 것도 좋아하는 것 같아 단순하게 생각해 소설가가 돼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당시 선생님의 말씀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과 같았어요. 사람이 무엇을 하고 살아야겠다고 정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나날의 순간 속에서, 책에서, 음악에서, 여행지에서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의 한 마디에도 귀 기울이고 꿈을 향해 출발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꿈이 없는 상태는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다는 상태가 아닐까요. 만약 여러분이 꿈이 없는 상태에 있다면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질문에 대해 자기 마음속으로 물어보고 또 물어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불행하지 않을 거예요. 물론 자신에게 닥친 수많은 일이 있을 겁니다. 그렇더라도 여러분이 ‘서른 살 이후 나는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열정을 다 바쳐서 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저는 소설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다음에는 자존심을 아무데나 걸지 않았습니다. 오직 ‘작가가 돼야겠다’ 거기에만 걸었습니다. 짧은 시간인 여름방학이나 휴식시간에 책을 꺼내 읽고, 그 책을 다시 읽고, 새 책이 없다면 읽었던 책을 다시 노트에 적었던 그 시절이 청춘의 징표처럼 남아 있습니다. 꿈을 이루려고 깊이 몰두하는 시간 덕에 자신뿐 아니라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이로운 영향을 미칠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잠재의식, 무의식에서 깊이 잠자고 있는 꿈, 나 자신을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꿈을 찾아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 신경숙 작가와 청중의 대화
“엄마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생각해보세요”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울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어떻게 효도해야 할까요.
“그걸 알면 작품을 안 썼을 것 같은데…(웃음). 제 생각에는 어떤 책을 읽고 사람이 갑자기 변하는 것은 이상할 듯해요.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어떤 분이 엄마에게 전화해 ‘사랑한다’고 하니 엄마가 ‘어디 아프니’라고 말했다고 해요. 그렇게 갑작스러운 변화보다는…. 제 생각에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마음속에 남아 있어 무의식중에 행동하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효도라는 것은 음… ‘엄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 이렇게 소통하는 것이 효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작가님은 글 쓰기 전이나 후에 꼭 하는 일이 있나요.
“글 쓰는 시간을 늦춰보려고 거의 한 달간 청소를 하기도 합니다(웃음). 책상서랍 정리도 하고, 밀린 e메일 답장도 하는데요. 주변 정리를 끝내야 글 쓸 생각을 합니다.”
여자친구가 아동문학 작가를 꿈꾸는데 20대에 꼭 했으면 하는 활동이 있나요.
“20대에는 책을 가려 읽지 않았으면 해요. 누가 추천해주기보다 자신에게 맞는 책을 찾아보길 바랍니다. 굳이 추천한다면 제가 쓴 ‘외딴방’은 어떨까요(웃음).
정리=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89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