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깎기의 정석/데이비드 리스 지음·정은주 옮김/226쪽·1만2000원/프로파간다◇여행정신/장 피에르 나디르,도미니크 외드 지음·이소영 옮김/351쪽·1만5000원/책세상
이로 기타를 친 지미 핸드릭스에게서 영감을 얻어 이로 휴대용 외날 연필깎이를 문 채 연필 깎는 묘기를 시연 중인 ‘연필 깎기의 정석’의 저자 데이비드 리스 씨. 이때 연필밥이 입 속의 혀 위로 떨어지게 되면 질식해서 죽을 수 있다는 친절한 경고의 말도 빼놓지 않는다. 프로파간다 제공
믿기 힘들지만 미국 뉴욕 주 비컨에 사는 저자는 연필 깎기를 생업으로 삼고 있단다. 연필 한 자루 깎아주는 데 현재 35달러(약 3만8000원)를 받는다고 한다. 그가 깎아주는 연필을 애용하는 유명인 중에는 미국 영화감독 스파이크 존즈도 있다. 그의 증언을 들어보자.
“내 평생 이렇게 요염하고 도도한 연필은 처음 봅니다. 연필이 나를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교양 없고 무식한 놈이라고 비웃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죽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만 연필로 내 목을 찌르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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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권은 마지막 장이다. 주머니칼을 필두로 각종 기구로 연필 깎는 기술(놀랍게도 ‘연필깎이 칼’은 아예 누락돼 있고 ‘전동 연필깎이’는 증오와 파괴의 대상이다)을 전수하던 그의 마지막 선택이 뭘까. 잠깐 상상해보시라. 빙고! 연필에 손 하나 대지 않고 ‘마음으로 연필 깎기’다.
‘연필 깎기의 정석’이 미시적 주제를 놓고 원심력 가득한 웃음을 안겨준다면 ‘여행정신’은 전 세계를 무대로 한 여행이라는 거시적 주제를 놓고 구심력 가득한 웃음을 선사한다. ‘현명한 여행자를 위한 삐딱한 안내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는 여행서 하면 떠오르는 화려한 풍광을 담은 사진은 단 한 컷도 없다. 대신 알파벳 A∼Z 순으로 여행 하면 떠오르는 단어, 인물, 장소에 대한 기지 넘치고 풍자적 글쓰기로 여행의 본질을 포착한다.
“관광객들은 바라보기를 끔찍이 두려워한다. 카메라가 그들 대신 바라본다. 그들은 찰칵찰칵 사진을 찍어야 마음이 편안해지고 여행의 충격을 가라앉힐 수 있다.”(‘찰칵찰칵’ 중)
“(가이드북은) 예전에는 성경책처럼 귀하게 여겨졌지만 이제는 제공되는 정보의 수준이나 인터넷에서 접하는 무료 정보에 비해 턱없이 비싼 가격 탓에 구닥다리가 돼버려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가이드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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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