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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호의 경제 프리즘]혈압 방치하면 중풍이 온다

입력 | 2013-07-09 03:00:00


허승호 논설위원

보통 고혈압에는 자각증상이 없다. 그러나 방치하면 뇌중풍(뇌졸중) 심장마비 신부전 등 무서운 결과를 가져와 ‘침묵의 살인자’라고 불린다. 그래서 혈압은 반드시 관리해야 한다. 이렇게 당연한 일을 정부가 안 하는 경우가 있다.

가장 뜨거운 노사 현안이 된 ‘통상임금’ 문제가 딱 그렇다. 작년 3월 대법원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비슷한 소송이 쏟아져 현재 대법원에만 10여 건 계류돼 있다. 하지만 올 상반기에 선고된 50여 개의 하급심 판결도 사안별로 엇갈린다.

근로기준법은 연장·야간·휴일 등 시간외수당을 ‘통상임금의 몇 배’ 방식으로 정하고 있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시간외수당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그러나 법 시행령은 통상임금을 ‘근로자에게 정기적, 일률적으로 주는 임금’이라고 모호하게 정의한다. 정부는 예규를 통해 ① 1임금지급기(매월) 내에 정기적 ② 일률적 ③ 고정적으로 ④ 소정근로의 대가로 지급하는 금품이라고 규정했다. 입법 미비를 메우기 위한 행정해석이다.

그러나 1995년부터 법원 판결에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정기적 일률적 고정적으로 지급하는 돈이라면 ‘지급 주기가 1개월을 초과하더라도, 또 직접적 근로 대가가 아니라 명절휴가비 등 복리후생 금품이라 할지라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는 새로운 판례가 슬슬 쌓이기 시작했다. 최종판이 작년 대법원 판결이다.

한편 지금까지 노사는 예규에 따라 ‘상여금은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는 암묵적 합의하에서 임금협상을 해왔다. 임금협상 과정을 겉으로 보면 ‘인상률 몇 %’를 놓고 씨름하는 것 같지만 기업이 정말 관심이 있는 것은 몇 %가 아니라 당년 인건비 총액이다. 노사 간 막판 타결에서는 그해 총인건비 규모에 접근한 뒤 역산해 인상률을 결정한다. 이게 가장 보편적인 협상구조이며, 그게 ‘시장임금’이다. 따라서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면 자연히 임금협상의 결과도 달라졌을 것이다.

만약 이제 와서 국내 모든 근로자가 “임금채권은 3년간 유효하므로 지난 3년간 과소 지급된 시간외수당 차액을 달라”고 요구할 경우 기업 측은 최대 38조 원의 부담을 진다고 한다. 노조는 로또를, 사용자는 날벼락을 맞는 꼴이다. 기업엔 비용도 문제지만 ‘노사와 재무의 엄청난 불확실성’을 하나 짊어지는 셈이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로또 또는 날벼락’의 조짐과 경고음이 있었지만 정부와 기업은 모르는 체해왔다. 직접적인 책임은 기업 측에 있다. 사용자단체(한국경영자총협회)가 초기 단계부터 정부와 국회에 “혼란과 충격이 없도록 법이나 예규를 정비해 달라”고 요구했어야 옳다. 정부도 판례와 예규 간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뭔가를 했어야 했다. 모두 제 밥값을 안했다.

이제라도 해법을 찾아야 한다. 예규로의 회귀는 불가능하다. ‘작년 대법원 판례로 통일하자’는 주장엔 기업이 동의하기 힘들다. 전체 경제에 미칠 충격도 크다. 그렇다고 ‘사업장별로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은 너무 소모적일뿐 아니라, 모든 기업에 싸움질을 시키는 최악의 선택이다.

사회적 대타협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고용노동부는 뒤늦게 임금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해 풀가동하고 있다. 전형적인 대증요법이지만 이거라도 안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은 대타협의 전제 위에 입법적 결단을 해야만 해소할 수 있는 일이다. 통상임금의 취지를 분명히 한 후 노사 간 이해와 갈등을 조정해 정리하는 입법이 필요하다.

의사가 특정 환자가 훗날 고혈압을 앓을지를 미리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고혈압을 그냥 두면 중풍이 온다’는 것쯤은 안다. 똑같다. 통상임금의 고혈압은 오래전부터 관측됐지만 정부와 기업은 혈압관리를 외면했다. 드디어 첫 충격이 왔고 이제야 ‘중풍만은 피해보겠다’며 허둥지둥한다. 21세기 한국 정부의 정책이 이런 수준은 넘어야 한다. 이런 게 하나둘이 아니긴 하지만….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