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연주 마치는 임헌정 부천필 상임지휘자
임헌정 부천필 상임지휘자를 두고 부천필 직원들은 “젊은 날을 부천필에 다 바쳤다”고 말한다. 2009년과 2011년 컨디션 난조로 무대에 서지 못했던 그는 “걷기 운동, 밥 반 공기, 물 마시기, 정기적으로 의사 만나기를 잘 지키려고 한다”고 했다. 그가 지휘하는 손동작을 합성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988년 겨울, 냉랭하고 눅눅한 지하연습실에서 단원 20여 명으로 출발한 부천필은 이듬해 36세의 임헌정 서울대 교수(60)를 첫 상임지휘자로 맞이한 이래 지금껏 함께 걸어왔다. 국내 교향악단 역사상 최장수 상임지휘자다. 1971∼1990년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이끌었던 정재동이 그 다음의 장수 지휘자다. 그만큼 부천필의 얼굴이었던 임 교수는 이번 연주회를 앞두고 내년 25년 임기를 채운 뒤 부천필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부천필은 1999∼2003년 국내 최초로 말러 교향곡 전곡(10곡) 연주로 주목 받으며 교향악단 명가로 부상했다. “말러 교향곡은 흥행이 어려우니 포기하라”는 충고가 빗발치는 가운데 1999년 11월 첫 공연 유료 객석 점유율 54.8%로 시작해 2003년 11월 마지막 공연 유료 객석 점유율 76.4%를 기록했다.
―그런데도 왜 브루크너였나요.
“산이 있어서 산을 오르는 것처럼, 브루크너가 있으니까요.(웃음) 브루크너는 짭짤하거나 달지 않아서 금방 맛있진 않아요. 진가를 느낄 때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좋은 걸 아는 사람이 전도사로 나서야지요.”
그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여행 때 일화를 소개했다. 오스트리아인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는 길이었다. 친구가 걸려온 전화를 받은 뒤 말했다. 절친한 지인이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는데 브루크너 7번을 들어야겠다고.
“브루크너는 친구 같은 곡이에요. 힘들 때 곁에서 위로해 주고 용기를 줍니다. 그런 음악이 좋은 음악이고 예술의 기본 기능과 맞닿아 있지요. 그래서 브루크너를 연주합니다. 언젠가는 관객이 브루크너를 좋아해 주지 않을까요.”
―24년간 이끌어온 부천필을 표현하는 한 단어는 무엇일까요.
“팀워크. 오래도록 같이 호흡한 악단에서는 연륜 있는 소리가 납니다. 금방 만든 겉절이가 아니라 푹 익은 소리지요. 단원들끼리 인간적으로 친하고 신뢰가 두터울 뿐만 아니라 연주가 잘 안될 때 스스로를 용서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어요. 안 되면 해내려고 하고 극복하려고 하는 그룹 멘털리티지요. 내가 시킨다고 되겠어요? 마음은 누가 시킨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는 “좋은 교인이 좋은 목사님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좋은 단원들이 긴 세월 동안 나를 잘 봐줬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다.
―부천필과의 동행은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