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박준서. 스포츠동아DB
롯데 박준서(32)의 경기는 5회 클리닝 타임 이후부터 시작된다. 어엿한 1군 엔트리 선수지만 경기 전 훈련이 끝나면 당장은 특별한 역할이 없다. 대개 5회까지는 덕아웃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것이 그의 일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롯데 야수진 중 최고참급이지만 스스로 나서서 파이팅을 보여준다.
중반전이 넘어가는 5회가 끝나서야 ‘게임 모드’로 돌입한다. 경기 흐름을 끊임없이 주시하고, 상대 투수를 관찰한다. 대타로 임무가 주어지다보니 이제는 코치가 얘기하기 전부터 나갈 타이밍을 짐작하고 준비할 수 있다. 박준서가 덕아웃에서 사라진 순간은 대타 출장이 임박해 어딘가에서 스윙연습을 하고 있을 때다.
그리고 롯데의 운명이 걸린 승부처가 돌아오면 거의 어김없이 박준서가 등장한다. 그 한순간 그의 타격에 팀의 승패가 걸려있을 때가 부지기수다. 잘 치면 영웅, 못 치면 역적이 되는 그 긴장감 속에서 박준서는 무려 3차례의 대타 결승타를 기록했다. 20일까지 득점권 타율은 24타수 12안타로 5할에 달한다. 득점권 타점은 18타점에 이른다. 특히 19~20일 잠실 두산전에서는 2경기 연속 결승타를 터뜨렸다.
원래 박준서는 서른살이 되기 전까지 개인주의적인 선수였다. 자기 플레이만 눈에 들어왔었고, 주전이 아니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야구단에서 팀 플레이어로서의 존재 가치를 깨달았다. “대타가 주전보다 힘들지만 대타 나름으로 팀에 기여하면 된다”는 마음이 생기면서 팀 플레이어이자 벤치 리더로의 변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12월에 태어날 둘째 아이를 생각하면 더 야구를 잘해야 한다는 마음뿐이다. 롯데가 객관적 전력의 열세에도 이 정도 성적을 내는 것은 박준서 같은 고참이 버티고 있어서일 것이다.
문학|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트위터 @matsri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