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신문과 놀자!/임형주의 뮤직 다이어리]20세기의 대표 지휘자

입력 | 2013-06-19 03:00:00

전설이 된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美클래식 슈퍼스타… 레너드 번스타인




세계적으로 많은 오케스트라(교향악단)가 있습니다. 단원을 훈련시키고 지휘하는 역할을 지휘자가 합니다. 작고 가는 지휘봉 하나를 들고 때로는 정열적으로, 때로는 부드럽게 이끌어 갑니다. 지휘자가 없다면 60∼100여 명의 단원이 참여하는 대편성 교향곡이나 연주곡을 선보이기가 힘들 겁니다.

동아일보 5월 30일자 A25면을 보니 ‘위기의 美 오케스트라, 30代 지휘자 대거 등용’이라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보스턴 심포니,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같은 미국의 명문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과 상임지휘자가 30대로 교체되는 중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20세기를 대표하는 불멸의 거장이자 세기의 라이벌이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89)과 레너드 번스타인(1918∼90)에 대해 이야기할게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 베를린 필하모닉의 영원한 수장, 카라얀

카라얀은 1908년 4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이곳은 유서 깊은 음악도시이지요. 그는 피아노 신동이었습니다.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공부하던 어느 날, 지휘를 공부하면 어떻겠느냐는 스승의 권유를 받습니다. 이후 1928년 12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지휘자로 정식 데뷔를 합니다.

잘츠부르크로 돌아가 1929년 1월 모교인 모차르테움 음악원 대강당에서 지휘자로서 성공적인 데뷔 콘서트를 합니다. 이를 계기로 승승장구하며 빈 필하모닉, 빈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극장) 관현악단을 지휘하다가 유럽 음악계의 주목을 받습니다.

그는 도이체 그라모폰, EMI 클래식스와 같은 유명 음반사와 계약하고 당시에는 신기술로 꼽히던 LP를 기반으로 음반 작업을 왕성하게 진행합니다. 다른 음악가처럼 새 기술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며 음반 활동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면 우리는 카라얀의 위대한 음악을 오늘날 듣지 못하게 됐을 수 있습니다.

카라얀은 1955년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후임으로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 자리에 오릅니다. 이후 1989년 눈을 감는 순간까지 35년이라는 기간을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장으로 활동합니다. ‘카라얀=베를린 필하모닉’이라는 공식이 현재까지 이어질 정도로 그는 베를린 필하모닉을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이자 전설적인 교향악단으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업적은 다 말하자면 입이 아플 정도로 많습니다. 생전에 3500회가 넘는 연주회를 열었고, 500여 종의 음반과 70여 종이 넘는 영상물을 남겼답니다. 20세기 클래식 음악계의 제왕, 전설의 대가, 기적의 지휘자라는 극찬을 받는 이유입니다.

레너드 번스타인

○ 클래식 음악계의 슈퍼스타, 번스타인

번스타인은 1918년 8월 미국의 매사추세츠 주 로렌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카라얀과 마찬가지로 어려서부터 피아노 연주를 좋아했습니다. 세계적 명문인 하버드대에서 문학 철학 음악학을 전공했고, 뉴욕의 줄리아드 음악원과 더불어 미국 음악학교의 양대 산맥으로 손꼽히는 필라델피아의 커티스 음악원에서 지휘와 작곡 기법을 배웠습니다.

번스타인은 1943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던 아서 로진스키의 인정을 받아 부지휘자로 발탁됩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14일 뉴욕 필하모닉의 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병환으로 무대에 설 수 없게 되자, 그 대신 지휘를 맡습니다. 이날 음악회는 CBS를 통해 미국 전역에 중계됩니다. 평론가와 음악 애호가들의 호평을 받으면서 번스타인은 스타덤에 오릅니다.

카라얀과 베를린 필하모닉처럼 번스타인은 뉴욕 필하모닉과 끈끈한 관계를 이어 갑니다. 1958년에는 상임지휘자를 거쳐 음악 감독으로 부임하여 1969년까지 뉴욕 필하모닉의 수장으로 활동합니다. 그는 자유분방한 성격을 최대한 발휘해 대중 친화적인 행보를 이어 갑니다. 대표적 활동 중 하나가 오늘날까지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는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라는 교육 프로그램 형식의 콘서트입니다. 당시 일반인에게는 상류층의 전유물로 받아들여지던 뉴욕 카네기홀이나 링컨센터 같은 정통 클래식 콘서트홀에 청소년을 초청해 클래식 음악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연주하는 음악회였지요.

공연의 반향은 대단했습니다. 기쁠 때는 덩실덩실 춤을 추듯이, 슬플 때는 연극 배우가 독백을 하듯이 화려한 무대 매너를 선보였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따분하게 여기거나 관심이 없던 청소년층은 물론 기성세대에게까지 큰 인기를 끌었지요. 작곡에도 재능이 뛰어나 뮤지컬 ‘웨스트 사이트 스토리’ 같은 대표작을 남겼습니다. 클래식 음악계의 슈퍼스타, 미국의 국보급 지휘자, 클래식 음악계의 팔방미인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하지요.

○ 둘은 서로를 인정하는 거장이었다

전 세계 언론과 음악 평론가 및 애호가는 둘을 세기의 라이벌로 몰아갔습니다. 그만큼 훌륭한 지휘자를 찾기 힘들었고, 클래식 음악계의 본고장인 유럽과 세계 경제를 주름잡던 미국을 각각 대표하기 때문이지요.

원치 않는 라이벌 구도가 오래 이어졌지만 이들은 서로를 인정했습니다. 자신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에서 상대방이 지휘할 기회를 주기도 했습니다. 카라얀이 번스타인의 유럽 투어 공연을 지원하고, 번스타인이 카라얀의 미국 공연을 주선해 주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지요.

카라얀과 번스타인. 위대한 두 음악가는 세기의 라이벌이지만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는 음악적 동료로서 페어플레이를 하며 깊은 우정을 나눴습니다. 공부가 중요하고 좋은 학교 진학이 중요하지만 여러분 곁의 친구와 멋진 추억을 함께 만들며 선의의 경쟁을 펼치면 인생이 더욱 풍요롭지 않을까요.

임형주 팝페라테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