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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만원 채무 5년 넘게 못갚아… 빚보다 연체사슬에 숨막혔다”

입력 | 2013-06-19 03:00:00

■ 국민행복기금 출범 2개월 ‘빛과 그림자’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에 사는 김주석 씨(51)는 최근 국민행복기금에 채무조정을 신청했다. 구두수선집을 운영하던 김 씨가 빚의 올가미에 갇힌 건 9년 전인 2004년. 간염에 걸려 일을 못 하는 상황에서 아들 2명의 학비를 대느라 카드사와 보험사 대출을 쓴 게 화근이었다.

김 씨는 원금에 이자를 더한 1673만 원의 채무를 조정 받아 이자 전액과 원금의 50%를 탕감 받았다. 평범한 직장인에게는 가계 살림을 짓누를 수준까진 아니지만, 김 씨는 이 돈을 갚지 못해 채권 추심업체의 독촉 전화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살았다. 앞으로 10년간 매월 5만1150원씩, 총 613만 원을 갚으면 김 씨는 빚에서 해방된다.

빚더미에 앉은 서민의 자활을 돕는 취지로 선보인 국민행복기금이 출범 2개월을 맞이한다. 4월 22일 가접수를 시작한 지 두 달여 만에 11만8845명이 채무조정을 신청할 만큼 서민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 소액 채무자들이 장기간 빚에 시달려

동아일보가 18일 금융위원회, 자산관리공사(캠코)와 함께 국민행복기금 신청자를 분석한 결과 국민행복기금 신청자는 평균 5년 6개월간 빚을 갚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채무액(원금 기준)이 500만 원 미만인 경우 연체 기간은 5년 9개월, 500만∼1000만 원 이하 채무자는 5년 10개월간 빚을 연체한 것으로 조사됐다. 빚이 적을수록 연체기간은 오히려 길었다.

이런 ‘기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소액 채무자의 형편이 워낙 어렵기 때문이다. 국민행복기금 신청자의 28.9%는 연간 소득이 1000만 원에도 못 미쳤고, 연 소득액 1000만∼2000만 원 미만도 47.4%에 이르렀다. 기금 신청자 10명 중 8명 가까이가 연 소득액 2000만 원 미만이라는 뜻이다.

국민행복기금 신청자의 평균 연체금액은 1300만 원. 신청자 중 500만 원 미만의 채무 원금을 짊어진 비중이 27.4%, 1000만∼2000만 원 미만 채무자 비중은 25.0%였다. 단돈 1000만 원을 갚지 못해 5년 넘게 빚 독촉에 시달려 온 서민들이 국민행복기금의 주 수혜자인 셈이다.

이해선 금융위 중소서민금융정책관은 “당초 3∼4년 정도 빚을 연체한 사람이 많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신청을 받아 보니 연체 기간이 예상보다 길었다”며 “오랫동안 채무에 시달리다 보니 빚을 갚을 의지를 잃어버린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 “자활할 수 있는 기회 줘야”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사는 최영길 씨(62)는 국민행복기금 채무신청을 통해 채무 원금 869만 원의 70%를 탕감 받아 향후 10년간 매월 2만1740원씩 갚으면 된다. 형편이 워낙 어렵지만 자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결과다.

83세 노모를 봉양하는 최 씨는 모친이 뇌출혈로 쓰러지자 병원비로 쓰려고 은행에서 2000만 원을 빌렸다. 대출을 해결하려고 임대사무실 보증금까지 뺐지만 빚을 모두 갚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동생이 연대보증을 잘못 서 집이 경매에 넘어가면서 최 씨는 고시원과 여관을 전전하고 있다. 최 씨는 “빚을 깎아 준다고 해 일단 신청은 했지만 솔직히 10년간 꼬박 잘 갚을 자신은 없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조정 받은 채무액을 엄격히 갚도록 제도를 설계했다. 3개월 이상 또 연체를 하면 채무조정 약정은 무효가 된다. 약정 취소 전 6개월 채무 연장신청을 4번에 걸쳐 할 수 있지만, 신청자 4명 중 1명이 연소득 1000만 원 미만인 저소득자라 언제라도 이들이 다시 빚의 굴레에 갇힐 위험이 있다.

김윤영 캠코 서민금융본부장(이사)은 “과거 비슷한 채무조정 프로그램 사례를 보면 빚을 잘 갚다가도 생각지 못한 의료비나 교육비를 쓸 곳이 생기면 상환을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고용노동부의 취업성공패키지 등을 통해 자활을 돕고 있지만, 취약 계층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복지 대책이 나와야만 국민행복기금의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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