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벼락 맞아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KBSN 정인영 아나운서는 수많은 관중과 시청자 앞에서 난데없는 물벼락을 맞은 뒤 카메라 앞에 서서 이렇게 사과했다. 그 모습을 보며 야구 여신(女神)이 감수해야 할 일이 또 하나 늘어났다는 생각을 했다. ‘마이크를 든 채 물을 뒤집어써도, 경기 내내 공들여 정리했던 취재 노트와 옷이 다 젖어도 절대 화를 내거나 얼굴을 찡그려선 안 됨.’
야구팬들이 야구 여신에게 요구하는 ‘여신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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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필수다. 야구 여신이 되는 데 있어서 야구 지식이 미모에 비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논란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야구팬들이 ‘얼굴만 예쁘고 야구는 모르는 아나운서’를 야구 여신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야구선수와 사귈 생각이 있느냐”는 인터뷰 질문에도 능숙하게 답해야 한다. “없다”고 말하면서도 슬쩍 여지를 남기는 게 장원급제감이다. 야구팬들의 기대를 너무 망쳐선 안 된다. TV 토크쇼에 나가서는 야구선수들의 ‘대시’ 유형 정도는 소개하며 너스레를 떨 줄 알아야 한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애교 축에 속한다. 얼마 전에는 각 스포츠 전문채널 간판 아나운서들의 휴대전화 번호가 통째로 ‘털려’ 인터넷에 공개됐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매년 발간하는 야구 관계자 수첩에 등록된 번호가 유출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았다.
방송사도, 팬도 여신에게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댄다. 실제로는 여자 아나운서들의 성적 매력을 소비하면서 겉으로는 아닌 척한다. 때론 여신들 스스로도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저널리스트의 자존심을 말하는 바로 그 순간에조차 인기 스타로 뜨고 싶다는 속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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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700만 관중을 돌파한 프로야구 무대에서 통산 홈런, 안타 기록 하나 없이 신으로 살기란 애초부터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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