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우 한화생명 경제연구원 상무
돌이켜보면 지난 몇 년간의 엔고는 특수한 현상이었다. 성장률 제로의 일본경제 체력으로는 가당치 않은 통화 강세였지만, 세계 금융위기로 엔화가 안전자산으로 떠올랐다. 금세기 초부터 금융위기 직전까지의 원-엔 환율 평균이 960원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한때 1600원대까지 치솟았던 엔고는 오래가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엔저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주요국들이 이런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경제대국 일본의 회복이 세계경제 성장에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재 일본이 추진하는 조치들이 주요국들이 과거 십수 년간 일본에 끈질기게 권고했던 정책이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정권이 표방한 ‘3개의 화살’, 즉 금융완화, 재정유연성, 성장전략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주요 선진국들로서는 엔저가 자국의 수출경쟁력을 깎아먹는 것이 달갑지는 않지만, 모두가 금융완화에 매진하고 있는 이때 일본에만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동북아 국제정치 역학구도에서 보더라도 중국이 무섭게 일어서고 있는 이 시기에 쇠락해가는 일본을 방치해 두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로서는 답답한 일이다. 세계경제 침체가 아직 가시지 않았고, 내부적으로는 양극화와 가계부채의 문제가 심화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성장모델이 아직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고통스럽고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다. 금융위기 이후 수출의존도가 더욱 높아진 우리 경제에는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과거에도 그랬지만 결국 우리 내부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절반의 해결책은 엔고시대 일본의 대응에서 찾을 수 있다. 즉 효율성을 높여 가격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환율은 1차적으로 상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품질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결국 품질을 높이고 신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각광받던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모두 엔고에 따른 것이었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정부도 손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기업이 질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때까지 급격한 환율변동으로 인한 부작용과 고통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엔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가깝게는 1997년 경제위기 직전 2년간과 2008년 금융위기 직전 3년간에도 직면했었다. 결과는 대조적이다. 앞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경제위기를 겪었고, 뒤에는 잘 준비하고 대처하여 오히려 세계시장에서 위상을 높였다. 이번 엔저 시대 동안의 대응이 향후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
황진우 한화생명 경제연구원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