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기관장 물갈이 예고… 잡음 없앨 3원칙은
문제는 덩칫값을 제대로 못 한다는 것이다. 국내 공공기관의 부채 총액은 2011년 현재 463조5000억 원으로 중앙·지방정부의 빚(420조7000억 원)보다 많다. 부채의 증가속도는 자산 증가 속도의 두 배에 이른다.
이처럼 중요성이 높고 문제도 많은 공공부문의 기관장을 뽑는 과정은 정권마다 잡음의 연속이었다. 임명권자가 전문성보다 선거에 얼마나 ‘공(功)’을 세웠는지 따졌고, 특정 지역이나 학교 출신 인사들로 좋은 자리가 채워지곤 했다. 이런 폐해를 막겠다며 도입한 공모제는 사실상 형식적 정당성만 채워 주는 도구로 전락했다. 전문가들은 박근혜 정부가 이전 정권에서 매번 반복돼 온 공공기관 파행 인사의 고리를 끊으려면 ‘낙하산 근절’에 대한 대통령의 확고한 신념과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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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에 동아일보가 공공기관 감사의 출신을 분석한 결과 88%가 정치인, 또는 공무원 출신이었다. 야당이던 한나라당의 분석에 의하면 정치권 인사만 140명이 낙하산 인사로 각계 정부기관에 둥지를 틀었다. 선거 공신을 우대하는 분위기는 이명박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업무 관련성이 없는 정치인을 공공기관 고위직에 취업시키는 ‘알박기 인사’는 임기 말이 될수록 더욱 심해졌다.
전문가들은 논공행상 인사가 만연하면 기관장들이 본연의 업무보다 연임을 위한 인사 청탁에만 매달리게 되고 유능한 실력자가 부당하게 도태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경고한다. 또 공공기관 내부의 인재들에게 적당한 동기 부여가 되지 않아 복지부동(伏地不動)의 자세만 키울 수 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미국에서도 선거가 끝나면 자리 나눠 주기를 하지만 한국처럼 큰 문제로 키우지 않는 자정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장관에게 산하 단체장의 실질적인 임명권을 보장해 시스템을 밟아 인사를 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② ‘무늬만 공모제’ 뜯어고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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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공모제가 도입된 뒤 거의 매년 공공기관장 공모 과정에서 잡음이 터져 나왔다. 노무현 정부 시절 2006년에는 한국영상자료원장 공모 때 ‘노무현을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 회원인 한 탤런트가 심사 과정에서 탈락하자 당시 문화부가 “다른 후보들도 도덕적 결함이 있다”며 재공모를 결정해 파문이 일었다. 이명박 정부 때인 지난해에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공모에서 특정 인물이 내정됐다는 소문에 노조 등이 반발하고 나서자 정부가 퇴직 예정이던 안택수 이사장의 임기를 연장시키면서 공모를 취소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공모제가 무력화된 것은 제도의 허점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공모제는 해당 기관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에서 공모에 참여한 후보들을 심사한 뒤 3∼5배수의 인물을 이사회가 주무 부처에 추천하면 주무 부처 장관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문제는 임추위가 3∼5배로 추천한 인물 중 임명권자는 자질 및 점수와 무관하게 아무나 임명할 수 있다는 것. 특히 임추위가 추천 기준이나 선정 과정을 공개할 의무도 없어 일단 ‘위’에서 점찍은 정치인이나 퇴직 관료가 추천 후보에만 들어가면 사실상 기관장에 임명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연강흠 연세대 교수(경영학)는 “기관장 후보를 3∼5배수로 뽑게 하는 것은 공모제를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추천 후보를 2배 이하로 줄이거나 추천 시 정한 후보자 순위를 공개해 순위가 뒤바뀔 때는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도록 해야 공모제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③ 편중 인사 피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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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비슷한 지역이나 학교 출신을 한꺼번에 등용하는 편중 인사는 정책 다양성과 전문성을 떨어뜨리고 공직 사회에 ‘끼리끼리 문화’를 형성시킨다는 큰 부작용이 있다. 또 다른 지역 출신 인사들에게는 소외감을 줘 정권 주변에서 분열과 갈등을 초래하기도 한다.
홍성걸 국민대 교수(행정학)는 “제도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편중 인사를 막는 것은 정권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지적했다.
유재동·문병기·유성열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