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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호의 경제 프리즘]바보야, 문제는 SO 아닌 서비스규제야

입력 | 2013-03-06 03:00:00


허승호 논설위원

정부조직법 때문에 새 정부의 국정이 마비된 상태다. 청와대는 창조경제의 중요성을 몰라주고 국정 발목 잡기나 하는 야당에 분개하고 있다. 기자도 ‘과학기술과 산업이 융합하고 문화와 산업이 융합하며 산업 간 벽이 사라진 경계선에 창조의 꽃을 피우겠다’는 창조경제의 철학에 동의한다. 나라 경제의 미래상을 결정하는 정말 중요하고 근본적인 변수는 창조경제가 지향하는 미시적 기업생산성이지, 환율 금리 따위의 거시정책수단이 아니다.
케이블TV 때문에 마비된 국정

그러나 기자의 눈에는 미래창조과학부 원안 통과에 조급증을 내는 청와대가 더 답답하다. 미래부의 핵심은 연구개발(R&D)이다.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에서 방송이 차지하는 비율은 3%에 불과하다. 방송 중 뉴미디어는 케이블TV, 위성TV, 인터넷TV(IPTV) 등이다. 남은 쟁점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즉 지역케이블TV를 누가 규제할 것인가에 불과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처럼 “이제 핵심적인 부분만 남아 이것이 빠진 미래부는 껍데기만 남는 것이고 굳이 미래부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주장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사실 새 정부만 R&D를 중시하는 건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지식산업 중심으로 경제시스템을 재편하겠다’며 지식경제부를 만든 후 3대 분야 17개 신성장동력 육성 계획을 내놨다. 10대 차세대 성장동력을 내건 노무현 정부는 과학기술부 장관에게 부총리 자리까지 새로 만들어줬다. 김대중 정부의 5T(Technology·정보 바이오 나노 환경 문화) 정책도 같은 방향이었다. 정권이 바뀌면 비슷한 보고서가 제목을 바꿔달고 나올 뿐이다. 창조경제는 결심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돈도 많이 든다. 긴 안목과 호흡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야 할 멀고 험한 길이다.

단김에 빼야 할 쇠뿔은 따로 있다. 서비스 산업의 규제개혁이다. 작년 현대자동차의 국내 판매대수는 67만 대였으나 해외에선 374만 대나 판 데서 보듯 제조업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반면 의료 금융 교육 법률 관광 등 고부가 서비스업은 영 제자리걸음이다. 서비스는 고용의 60%를 차지하지만 저부가의 도소매 음식숙박업에 몰려 있다. 임금도 제조업의 60%로 소득불평등의 한 요인이다. 대형마트, 재벌빵집 규제 등 철지난 논란이 계속되는 것도 이들이 생계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잠깐 의료산업을 살펴보자. 국내 의대엔 이공계 최고 인재가 몰려 있고 의료 수준도 세계적이다. 그래서 최근 외국인 환자의 방한이 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작년 방한 환자는 15만7000명으로 태국(2010년 156만 명) 인도(73만 명) 싱가포르(72만 명)에 한참 못 미친다. 의료에 대규모 자본이 들어와 제대로 산업화하는 경로가 꽉 막혀서다. 서비스 경쟁력을 휴대전화의 절반 수준으로만 키워도 대박을 터뜨릴 텐데…. 신성장동력의 마지막 노른자는 서비스다.
‘손톱 밑 가시’보다 대못부터 빼야

새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손톱 밑 가시’를 뽑고 있다. 좋다. 그렇지만 성장과 일자리를 온통 옥죄고 있는 ‘서비스 대못’부터 빼야 한다. 그래서 기업가 정신이 넘쳐나도록 해야 한다. 기득권을 가진 선점업계와 이념형 시민단체의 반대가 장벽이다. 미루면 못한다. 개혁 추동력이 있는 정권 초기에 해야 한다. 경제장관이 영리 의료법인을 허용하려 할 때마다 복지장관의 반대로 실패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창조경제는 미래부 장관에 믿고 맡겨도 괜찮겠지만 이건 다르다.

경영의 구루들은 일 처리의 우선순위는 중요성과 시급성에 따라 가리라고 가르친다. ①급하고 중요한 것 ②급하지만 덜 중요한 것 ③안 급하지만 중요한 것 ④안 급하고 안 중요한 것 순이다. 중요도를 따지면 창조경제가 앞설지 모른다. 그러나 시급하기는 서비스 규제 철폐가 더하다. 이건 돈도 안 든다. 이를 놔둔 채 SO 같은 것에 힘 빼는 건 바보짓이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