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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의 옷을 입었죠”

입력 | 2013-01-26 03:00:00

■ ‘문명의 배꼽, 그리스’ 펴낸 박경철 씨




코린토스의 유일한 그리스 유적인 아폴론 신전 앞에 선 박경철 씨. 그는 “4월까지 그리스 문명권 여행을 끝낸 뒤 남미를 돌아볼 계획”이라며 “머릿속에 조금씩 쌓아왔던 지식이 가슴으로 내려올 때까지 5년이고, 10년이고 여행을 끝내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리더스북 제공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의회 앞 신타그마 광장 쪽이었다. 시위대가 운집해 있던 그곳에서 은퇴한 약사가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아테네에 도착해 공항버스에서 막 짐을 내리려는 순간, 아테네 민주주의 심장인 신타그마 광장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시골의사’란 필명으로 경제전문가 작가 방송인으로 활약해온 박경철 씨(49·안동신세계연합의원 원장)가 그리스 문명의 현장을 답사한 책을 펴냈다. 안철수 전 대선후보와 전국을 순회하며 ‘청춘콘서트’를 했던 그는 2011년 겨울부터 그리스, 터키, 스페인, 이탈리아, 이집트 등을 떠돌았다. 그의 책은 10권으로 묶여 나올 예정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리스에 대해 두 가지 관심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신화, 올림포스, 하얀 대리석의 나라라는 몽환적 이미지이고, 또 하나는 국가 부도 사태를 맞은 비탄과 고통의 나라입니다.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 속에는 엄청난 공백이 있습니다.”

그의 책은 하얀 대리석 돌무더기로 남아 있는 신전이 화려한 빛깔로 채색돼 있던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이야기부터 비잔틴 시대, 19세기 터키 지배, 20세기 독립전쟁, 최근의 경제위기까지 그리스의 역사를 넘나들며 그리스 문명의 현대적 의미를 찾아간다.

그는 지난해 여름 그리스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법안이 통과되던 날에도 그리스 국회의사당 앞 10만여 명의 시위대 중에 맨 앞줄에 서 있었다. 그는 “외신에서 폭동사태를 묘사한 ‘불타는 그리스’의 이미지와는 달랐다”고 기억했다. 수천 년 이어져온 그리스의 ‘공동체 정신’이 위기 속에서도 발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해발 5000m가 넘는 수백 개의 산 속에 200여 개의 폴리스 공동체가 발전해온 나라입니다. 도시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아버지가 일하는 올리브 농장, 친구의 레스토랑에 몸을 의탁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에서 보듯 그리스에는 지금도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이 흔해요. 그리스는 경제위기 속에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낮을 정도로 개인의 고립무원 현상은 벌어지지 않았어요.”

박 씨는 이런 그리스인의 태도를 폭넓은 수용성이라는 그리스 문명의 본질에서 찾았다. 20세기 말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주목을 받은 이유는 미국 중국처럼 세계를 힘으로 제패하는 패권주의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지만 그리스는 다르다는 얘기였다.

“그리스도 지중해를 중심으로 ‘마그나 그라키아’라는 거대한 식민지를 건설했어요. 그러나 착취와 약탈 대신 문명의 교류를 추구했어요. 알렉산더 대왕은 동방을 점령한 후 그리스인의 군복을 벗고 페르시아 옷을 입을 정도였죠. 우리나라까지 전파된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화는 착취와 약탈로 이룰 수 있는 문화가 아닙니다. 21세기형 ‘융합과 수용’의 문화지요.”

박 씨는 지난 대선에서 벌어진 세대 및 이념갈등에 대해 “조급하게 비난하기보다는 서로 상대방의 선택을 이해하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마음을 키워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스에서는 세대갈등이 거의 없어요. 윗세대는 지혜와 문화를 전달해주는 스승으로 존중되죠. 그리스는 어릴 적부터 행복해지는 법에 대해 배웁니다. 반면 우리는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가르쳐요. 타인을 자꾸만 경쟁상대로 보니까 대립과 갈등이 심해지죠. 넘어진 사람에게 손길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승화’시켜 주는 적극적인 공동체 의식이 필요한 때입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