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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오르는 오바마 2기]인종정책

입력 | 2013-01-19 03:00:00

노예해방 150주년… 킹 목사 ‘I have a dream’ 연설 50주년에 재취임하는 오바마
‘성난 백인’ 포용… 인종 화합의 꿈 이룰까




“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타협은 필요하다.”

2011년 8월 국가부채 한도 상향 조정 협상이 한창일 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 벽에 걸려 있는 노예해방선언문 사본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 당시 대통령은 남부의 노예 해방을 위해 북군이 점령한 주의 노예를 그냥 존속시키는 타협적 내용의 노예 해방 선언을 발표했다. 남부 노예를 해방하기 위해선 북군의 군사력 충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선언문을 바라보며 “링컨은 국가지도자로서 타협의 지혜가 필요했지만 당시 사람들은 ‘링컨이 노예를 팔아먹었다’라고 비난했다”라며 씁쓸하게 웃었다고 한다. 국가부도 위기 상황에서 공화당과의 타협이 절실했지만 민주당의 반발도 고려해야 했던 오바마 대통령의 고충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 기대가 많았던 만큼 실망도 컸던 오바마의 인종정책

올해는 미국 인종사에서 중요한 해다. 노예해방 선언 150주년을 맞고 흑인 지도자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나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명연설을 한 지 50주년을 맞는 해다. 오바마 대통령의 2기 취임식이 열리는 21일은 ‘마틴 루서 킹 데이’다. 또 취임식 장소인 의사당은 킹 목사가 연설했던 링컨 메모리얼을 바로 마주 보는 곳이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동시에 재선에 성공했다는 역사적 의미를 가진 그지만 최근 4년간의 인종정책에선 실망이 컸다. 오바마 대통령 1기의 인종정책은 ‘타협’이라는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많은 국민, 특히 소수 인종은 오바마 대통령이 인종 갈등을 치유하고 의미심장한 인종 화합 정책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경제 회복, 건강보험 개혁 등 당면 과제에 치중한 오바마 대통령은 인종 문제에서 별다른 업적을 내놓지 못했다.

2009년 8월 자신의 집에 들어가려던 헨리 루이스 게이츠 하버드대 교수(흑인)를 체포한 백인 경찰을 “어리석다”라고 했다가 백인들에게서 큰 반발을 산 뒤 오바마 대통령은 인종 관련 발언을 자제했다. 2010년 중간선거에서 강경 보수 티파티 주도의 공화당에 패한 뒤 오바마의 출생지를 문제 삼는 ‘버서’ 운동이 등장한 것도 오바마 대통령이 인종 문제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요인이다. 지난해 2월 히스패닉계 백인의 총을 맞고 사망한 플로리다 흑인 소년 트레버 마틴에 대해 “내가 아들이 있었다면 마틴 같았을 것”이라고 했다가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기도 했다. 크리스토퍼 에들리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로스쿨 학장은 “백인 대통령이 아닌 흑인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는 인종 관련 발언은 부작용을 내고 논란을 일으켰다”라며 “오바마 대통령은 경제와 외교에 치중하고 인종 등 사회문제에서 멀어지는 정치적 타협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인종 문제에서 별다른 진전을 이뤄 내지 못하면서 상당수 미국인의 실망감은 커졌다.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바마 1기 취임 직전 ‘인종 갈등이 해소될 것이다’라고 답한 비율은 56%에서 취임 직후 70%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이후 하향곡선을 그리면서 지난해 대선 직전 33%까지 내려갔다.

최근 4년 동안 경기침체로 사회적 보수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백인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다. 반면 흑인 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변함없는 지지를 보냈다. 이로 인해 “인종 갈등이 더 심화됐다”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여기에 ‘1% 대 99%’의 대결이라는 빈부 격차 갈등까지 가세하면서 사회적 분열은 더욱 심화됐다.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득표율에서도 인종 분열적 양상은 드러났다. 오바마 대통령은 백인 지지율이 40%에도 미치지 못한 반면 흑인 93%, 히스패닉계 71%, 아시아계 73% 등 소수 인종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재선에 성공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오바마 시대에 ‘인종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라며 “‘앵그리 화이트맨’으로 불리는 저소득 백인층의 반감을 어떻게 포용하느냐에 오바마 2기의 성패가 달려 있다”라고 분석했다.

○ 오바마 2기에는 인종 문제에 관심 높아질 것

큰 격차를 보이며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감에 차 있다. 전문가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인종정책에 큰 변화가 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재선 확정 뒤 연설에서 미 국기에 맹세하는 이민자의 딸, 시카고 남부 빈민가 출신의 흑인 소년, 노스캐롤라이나 가구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자녀를 예로 들며 “미국은 포용적인 나라가 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2기 취임 연설에서도 인종화합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를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서서히 인종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높여 갔다. 인종차별적 유권자신원(ID) 확인법에 제동을 걸고 불법 이민자 강제 추방 유예조치를 내놓는 등 소수 인종 인권 향상 정책을 내놓았다. 연방대법원은 소수 인종 우대 정책에 대한 중요 판결을 앞두고 있다.

오바마 2기 행정부에서는 인종뿐만 아니라 낙태, 이민. 동성결혼, 환경 등 다른 사회적 이슈에 대한 정책에도 무게가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보수파와의 갈등이 수반하는 이런 정책들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벤저민 젤러스 미국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 회장은 “미국의 인종 갈등이 더 심해진 만큼 오바마 대통령이 인종 화합이라는 대과제를 더는 피해 갈 수 없다”라며 “많은 논란이 있겠지만 이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서 반드시 풀고 가야 할 운명”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