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이촌역 연결 ‘박물관 나들길’ 디자인한 김영세 대표천장-바닥-좌우 벽면에 태극문양-사괘로 장식“흐르는 가야금 연주 들으며 애피타이저 맛보듯 걸어요
박물관 나들길을 배경으로 선 김영세 이노디자인그룹 대표. 그는 태극기에서 매력적인 디자인 요소를 발견한다고 했다. 그가 디자인한 ‘한식 세계화 인증마크’도 태극기의 4괘를 이용한 것이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국립중앙박물관과 서울 지하철 이촌역을 잇는 지하보도 ‘박물관 나들길’이 27일 개통된다. 매년 약 300만 명이 이 박물관을 찾으며 이 중 60%인 180만 명이 지하철을 이용한다. 지금까지 이촌역에 내린 사람들은 지상으로 나와 회색 담장에 철조망을 얹은 미군부대 담길을 따라 걸어야 했지만, 이제는 전문 디자이너가 꾸며놓은 255m 나들길을 걸으며 박물관으로 들어설 수 있게 됐다.
디자인을 총괄한 김영세 이노디자인그룹 대표는 “메인 박물관에서 정식 관람을 하기 전에 가볍게 전채요리를 먹는 느낌을 선사하고 싶었다”며 태극기를 소재로 한 디자인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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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회의 때 바닥에 4괘를 깔겠다고 했더니 ‘태극기를 밟고 지나가란 말이냐’는 반론이 나왔습니다. 제가 1초도 망설임 없이 말했지요. ‘그럼 곤만 그립시다.’”
박물관을 향해 서서 볼 때 나들길의 오른쪽 벽은 태극, 맞은편 벽은 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을 형상화해 꾸몄다. 우선 알루미늄에 태극 선 모양을 따라 작은 구멍을 뚫고 뒤쪽에 조명을 설치해 구멍 밖으로 불빛이 태극 모양을 그리며 새어나오게 했다. 왼쪽엔 같은 원리로 박물관 소장품 모양의 불빛이 새어나온다.
김영세 대표가 태극기의 4괘를 이용해 디자인한 박물관 나들길의 벤치. 김영세 대표 제공
“태극의 곡선은 한국인의 유연함을, 4괘의 직선은 강인함을 표현한다고 생각해요. 보면 볼수록 태극과 사괘가 절묘하게 어울려 한국인의 특성을 잘 나타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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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들길 프로젝트를 의뢰받고 “1km(255m×4)가 넘는 화폭에 대한민국을 담아보라는 주문을 받는 느낌이었다”며 아이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메모지에 나들길을 스케치한 것을 찍은 화면이었다. 의뢰를 받은 뒤 첫 스케치가 5분 만에 떠올랐다고 했다.
“그동안 생각하고 연구하고 고민해뒀던 것들이 잠재돼 있다가 필요할 때 터져 나온 것이죠. 제 작품으로 코리아라는 브랜드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었거든요. 아이디어는 뭘 뒤져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평소의 축적과 필요할 때의 몰입이 중요하죠.”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