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길
나는 우리 사회가 이처럼 병들게 된 것에는 정치인들이 저질러 놓은 겸허하지 못한 행동과 말, 그리고 편의에 따라 하는 약속, 신뢰를 쓰레기처럼 여기는 정치인들에게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로써 지금의 정치는 국민적인 불신을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 된 세상인지 세금도둑을 보고도 도둑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그 도둑들을 잡을 생각도 않는다. 그래서 인제 와서는 국고를 거덜 내는 도둑들뿐만 아니라, 공짜를 바라는 세태를 나무랄 수도 없게 되었다.
나는 지난해 부과된 세금을 은행에서 빚을 내어서 냈다. 이런 돈으로 낸 세금이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도둑을 맞았다면 과연 국세청은 체납자들을 찾아가서 윽박지를 면목이 있는지 묻고 싶다. 이런 사회적 괴리는 물론 법이 엄연한데도 그 법을 집행하는 방법과 태도가 흐리멍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보다 더 지엄한 것은 양심이다. 이 양심을 버리는 자들이 정치 일선에 횡행하고 있는데, 가난을 이겨내려고 몸부림치는 서민들에게 양심을 가지라고 종주먹을 들이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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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기간에 거침없이 내쏟았던 배려와 관용, 소통과 화합을 지켜나가려는 고단할 여정은 우리로 하여금 연민을 느끼게 한다. 그런 것만 챙겨야 할까. 아니다. 승자는 패자의 고통과 분노가 어디서 어떻게 출발하였는지 꼼꼼하게 살펴서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 주어야 한다. 이 순간 패자는 할 일이 별로 없을지 모르지만, 승자는 해야 할 일이 몇 배로 늘어나고 말았다. 패자가 쏟아낸 폐부를 찔렀던 흑색선전도 이젠 바람에 날려 버려야 한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상대방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배려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을 빌미로 보복의 수단으로 삼아서도 안 된다. 나의 실패를 상대방의 탓으로 돌리거나 나의 승리가 상대방을 무덤에 몰아넣었으므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은 또 다른 실패를 부를 뿐이다. 갈등을 해결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정은 가능하다. 그것이 상생과 화합을 지향하는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매사에 남을 헐뜯기 좋아하는 사람의 심장은 청명하지 못하다. 남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언어를 구사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사악함에 전염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은 그것을 징벌의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된다. 모든 것은 용서되고 잠시 옷깃을 스쳐간 바람으로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 빨리 소통과 화합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신뢰와 약속 지킴의 정치는 더는 우리로 하여금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게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