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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전쟁보다 형제사이 내전 상처가 더 큰 이유

입력 | 2012-12-01 03:00:00

◇친밀한 살인자/러셀 자코비 지음·김상우 옮김/304쪽·1만5000원·동녘




창세기 4장에 등장하는 ‘인류 최초의 살인’인 카인과 아벨 간의 형제 살인. 다니엘레 크레스피의 ‘카인과 아벨’. 동녘 제공

10여 년 전 방영된 쿠웨이트의 국민드라마 ‘와탄 아나르(고향의 아침)’는 쿠웨이트판 ‘태극기 휘날리며’라 할 만했다. 1990년 이라크와 쿠웨이트 사이에서 벌어진 걸프전쟁을 배경으로 전쟁에 참여한 형제를 통해 혈육 간 상잔의 비극을 그린 이 드라마는 당시 시청자들의 눈물콧물을 쏙 뺐단다. 국경을 맞대고 자유롭게 교류했던 이라크인들의 도발에 쿠웨이트인들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지난달 현지 출장 중 만났던 한 쿠웨이트인은 “믿었던 형제가 등에 칼을 꽂은 것 같은 배신감은 말로 다 할 수 없다”며 “차라리 아예 모르는 민족이 죽였다면 이렇게까지 원망하고 아파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6·25전쟁을 경험한 우리로서도 공감이 가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위험의 근원은 낯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익숙한 것에 있다. 이 책이 시종일관 강조하는 메시지다. 사람들은 종종 친척, 지인, 이웃처럼 자신과 가까운 사이에 있는 이들에게서 더 큰 불안과 위협을 느낀다. 저자는 이를 두고 ‘그들의 허물, 믿음, 욕망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믿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달리 말하면 가까운 이들의 허물과 욕망을 덮어줄 만큼 우리가 완벽하지 않기에, 이들이 잠재적 위험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익숙한 사례를 엮어 새로운 발상을 이끌어냈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다양한 ‘이웃 살인’의 역사들을 들어 폭력의 뿌리를 추적했다. 멀게는 인류 최초의 살인이라고 불리는 성경 속 카인과 아벨 형제 이야기부터 가깝게는 현재진행형인 수단 내전까지, 친밀한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폭력의 모습을 조명한다.

저자는 특히 국가 간 전쟁보다 잔인하고 후유증도 훨씬 오래가는 내전에 주목한다. 국가 간 전쟁은 오히려 솔직한 편이다. 전사자는 매장하고 부상자는 치료나 도움을 받으면 되고, 전쟁의 올바름을 의심하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내전은 개인적인 갈등 요소와 정치적인 요소가 뒤섞여 있기 때문에 상처가 깊게 남으며, 치유가 된다고 해도 매우 더딜 수밖에 없다. 내전이 오래되다 보면 ‘대체 왜 이들을 죽여야 하는지’에 대한 명분과 이유조차 모호해진다. 그렇게 형제 살인은 죽는 자와 죽이는 자 모두를 파멸로 끌어간다.

“폭력은 형제 살인의 경향이 있으며,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닮았기 때문에 발생한다.”(205쪽)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 저자의 지적은 무릎을 탁 칠 만큼 탁월한 해석이다. 물론 최근 기승을 부리는 ‘묻지 마 범죄’ 같은 특수한 형태의 폭력까지 아우를 수는 없지만, 세계적으로 여전히 매듭을 짓지 못한 대부분의 지역 분쟁들이 국가 간 전쟁이 아닌 내전에 가깝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그렇다. 달라도 너무 달라서 싸우는 게 아니라 비슷하고 친밀한 상대가 노선을 이탈하는 경우 느끼는 반감이 폭력을 부르는 셈이다. 미래의 이웃 살인으로부터 멀어지는 키워드는 관용이다. 관용에 인색하면 답은 없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